오늘 아이폰 텐을 사서 기분이 정말 좋은 상태에서 야근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왜 신은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주시는지. 여튼 야근을 위해 회사 사람들과 식사를 하러 나왔다. 회사와 계약한 식당들은 너무 자주 먹은데다 조미료가 주인 요리들이어서 야근을 하면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다들 같은 생각이어서 오랜만에 팀사람들과 외식(?)을 하게 되었으니 그 장소가 백합만개다.
회사에서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했기에 중간에 계속 다른 가게에 가자는 민심이 발생했지만 다행히도 자리가 없거나 매번 먹던거랑 다르지 않아서 어찌어찌 가게에 도착했다. 최근에 생긴 곳인지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공간도 넓으며 사람도 많아서 저녁시간에 딱 맞춰서 온다면 서서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퇴근이 다른 곳에 비해 늦은데다 뭐 먹을까 고민한 시간에 먼거리를 걸어와서 네명이 밥 한끼 먹을 자리는 얻을 수 있었다.
가격이 예상보다 상당히 비싸다.
나는 돼지의 고기나 뼈로 우려낸 고기국물을 좋아하지 않는터라 고기국수나 순대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주도의 앙끄레국수나 강동 경찰병원 근처에 있는 순대국집처럼 비린내를 완벽하게 없애거나 다른 향으로 덮어주는 곳이 아니면 애지간해선 먹지 않는다. 여기도 처음 와 본 곳이라서 돼지국물을 먹는 것은 조금 거부감이 있어서 닭고기 베이스의 국물의 고기국수를 주문했다.
남들은 아이폰 텐으로 잘만 찍던데... 어쨋든 닭고기를 베이스로 한 고기국수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매우 괜찮다.
비싼 가격이라서 다들 "어디 얼마나 맛있나 한 번 보자"라며 벼르고 있었는데 국물 한 입 먹는 순간 다들 조용해졌다. '여기 너무 비싼거 아니냐'는 불만들이 줄곧 새어나왔지만 국물 한 입에 '그래도 돈이 아깝지 않네요'라고 의견이 수렴되었다. 백합만개라는 가게명처럼 조개류로 국물을 개운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닭고기를 우려서 국물이 아주 깔끔하고 시원했다. 돈육을 사용한 고기국수도 한 입 맛보았는데 다음에 올 때는 돈육으로 삶은 고기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비리지 않고 잘 만들었다.
다만, 비빔국수의 맵기가 꽤나 매운편이라서 주의를 요해야한다. 종업원은 조금 맵다고 했지만 조금 매운 수준이 아니다. 난 비빔국수보다 고기국수를 추천한다. 꽤나 장사가 잘되는 집이라서 종업원들이 주문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운없게도 우리 테이블이 그랬다) 그래도 서빙하는 분들이 불친절하지 않고 웃으면서 기분좋게 식사를 하게 해주신다. 양은 남자들이 먹고 부족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니 넉넉하다 할 수 있다.
맛집 지도를 보면 교대와 강남역의 맛집들이 남부터미널까지는 오지 않는 듯한 형태이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 덕분인지 그래도 이 불모지에 화려하게 피어난 꽃마냥 장사를 하는 맛집들이 있다. 오늘 그 리스트에 하나를 더 추가한 것 같아서 매우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주말에 출근하거나 야근에 일을하게 된다면 백합만개와 우작설렁탕을 주로 갈 것 같다.
이 글을 더 쓴다는건 또 야근했다는 소리다. 여전히 백합이 가득 들어 시원한 국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면과 조갯살로 배를 채워 넣으니 살 것만 같다. 오늘은 먹으면서 해장을 하고 싶은데 매운 것은 속에서 받지 못할 것 같은 때에 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술로 인해 돌처럼 딱딱해져 있는 것 같을 때 조개와 돼지 또는 닭으로 시원하게 낸 국물을 쭉 들이키면 위장이 야들야들해지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게 속이 좀 풀리고 면을 먹으면 곧 정신도 돌아오지 않을까. 몇 번을 먹어도 가격은 비싸게 느껴지지만 음식을 먹으면 이해가 되는 집이다.
친구가 아이폰으로 음식사진 잘 찍는 법을 알려준 뒤 사진 바보에서 조금 나아진 것 같다 :)
PS
이번엔 겐로쿠 우동. 역시나 양은 적지만 국물은 시원하고 면발은 굉장히 쫄깃하다. 신문기사를 보니 일본식 면요리 전문점 '백합만개'라고 소개를 했는데 광고성 기사지만 고기국수와 우동을 먹어보면 꽤나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