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차에 올라탄 뒤 또 한 시간 정도 달렸더니 이젠 산길이 나온다. 꼬불꼬불하고 험한 산길은 산이 있는 곳이면 전세계 어디든 똑같나 보다. 메인 메뉴가 같다면 양념으로 맛이 바뀌는게 음식인 것처럼 산길 풍경이 메인이라면 풍경의 작은 것들이 양념이 되어 보는 사람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올라가는데 간간히 보이는 '길 비켜주지 않는 소 떼'들과 카톨릭 성당 또는 수도회가 대표적인 양념이다. 잊고 있다가도 '아 여기 한국이 아니지'라고 생각나게 해주는 풍경들이다. 어라? 근데 하나같이 이슬람 국가의 것들이 아니잖아.
길고 긴 길을 올라가는데 드라이버가 계속 불안하게 구름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한다. 어제 비오고 오늘도 잔뜩 흐려서 키나발루산을 못보는게 아닌가 계속 걱정이 된다. 아무리 그래도 '아주 잠깐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함께 다들 조용히 창밖만 본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멍 때리는 것일지도 한 시간 여를 달려서 드디어 키나발루산 전망대에 도착!
망했다
저기에 키나발루산이 있다. 착한 사람 눈에는 보인다는데 난 죄를 많이 지었나보다
구름이 잠깐 기다린다고 보여줄 상태가 아니다.
동네 똥개들. '어휴 이 답답이들'이라는 듯.
최대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산을 그려보자
한 시간 정도 쭈삣대면서 기다렸을까? 우리한테 키나발루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이건 어찌저찌 살짝 그림자라도 볼 수 있는 상황도 안된다. 다들 낙담한 상태인데 가이드가 여기 수제 가방 파는 곳이 있으니 다녀와보라고 한다. 우버드라이버지만 진짜 패키지 여행 상품처럼 물건 사는 곳까지 준비하여 가이드를 해준다. 이런건 안해줘도.. 얘네들도 우리가 물건사면 얼마 나눠 받나? 안그럴것 같지만 어짜피 산은 부끄럽다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시간은 남아도니 구경을 하기로 했다.
수제치고는 너무 양이 많은거 아닌가
만원짜리 숄더백을 코타키나발루에서 안샀다면 여기서 샀을텐데 이미 가지고 있어서 구매는 안했다. 수제란 것을 감안하면 적당한 값이지만 그래도 3-5만원 주고 사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어이구 병신들 ㅋㅋ' 이라 하는 듯
꽃이나 찍어야지 ㅠㅠ
사진을 찍으면서 '집에 돌아가면 사진 보정하는 법을 공부해서 좋은 사진을 남겨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오니 만사가 귀찮고 사진을 보니깐 해도 의미없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기는 여행하면서 그 날 그 날 기록하고 수정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여행할 때는 피곤해서 또 하기 싫다는.. 실제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도착했을 때 망했다는 것을 직감할 정도로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저녁처럼 어두웠다. 최대한 밝은 사진을 얻고 싶어 내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별 의미 없어 보인다. 게다가 블로그에는 사진마저 사이즈를 720으로 줄여서 올리니 그게 그 사진이다. 그냥 날 좋은 날 많이 찍고 그 중에 운 좋게 잘 나온 것을 얻는게 일반인들이 사진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같다.
멍때리면서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국말 소리가 들린다. 별로 안유명해 보이는 곳인데 나름 단체관광 포인트인가 보다. 한국 패키지 버스가 한 대 오더니 우루루 내린다. 내리고 나서 다들 들떠서 전망대에 달려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게 뭐야~'라며 아쉬워 하신다. 그래도 그 와중에 농담하면서 웃어 넘기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대단해 보인다. 우린 아쉬워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데.
경비 (보수적으로 계산하여 x 300원 하면 한국돈으로 계산 됩니다)
- 투어비 RM 150
- 물 RM 1.95
- 물, 담배 RM 18
- 9월1일까지 방 값 RM 72.1
- 두리안 쉐이크 RM 9.9
- 칼스버그 맥주 RM 22
하루 쓴 비용 : RM 273.95
여행 총 경비 : 2875000원 + RM 132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