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덕분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KTX가 최근에 개통됐다. 가는데 1시간 30분으로 대중교통으로 분당에서 북한산가는 것보다 빠른시간에 강릉에 갈 수 있다. 단순 시간 계산만을 했더니 이제 강릉에서 숙박을 꼭 하지 않더라도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해 보인다. ~~어디서 숙박업소 한숨 쉬는 소리가..~~ 정말 그게 가능한지 얼마나 빠르고 편한지 한 번 다녀오자고 엄마를 꼬셔 둘이 의기투합하여 당일치기 강릉여행 결정!
미리 이틀 전날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집 근처인 청량리역에서 탔다. 해돋이로 인해서 그런지 가는 표는 정말 어렵게 특실(36,400원)로 구했고 오는 표는 널널하게 할인된 일반석(22,100원)으로 구했다. 비싼 돈을 더 주고 타본 특실은 특실이란 이름답게 땅콩도 주고 물도 챙겨 준다. 자리도 넓직한데다 KTX답게 기차소리도 아주 조용하다.
기차를 타고 좀 지나니 옆에 어디 회사 회장님이신지 아주 고령의 할아버지 한 분과 비서처럼 보이는 조금 나이 많은 할아버지 두 분이 경상도 사투리로 한국의 미래와 사업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하시면서 가셨다. 이 좋은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 것은
"그 노인네들 남 생각 안하고 드럽게 시끄럽게구네. 회의를 할거면 나가서 하던가 왜 여기서 이러는거야. 저 정도 나이면 매너란 것도 배웠을텐데 어휴"
였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조용한 공공장소에서 하면 소음이다. 특히 KTX는 버스와 달리 매우 조용하니 더욱 더 조용히 가야한다. 티비에서 계속 통로에서 통화하고 애들도 조용히 시켜달라고 괜히 보여주는게 아니다. ~~어떤 글을 봤는데 중국인들이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기차 안 고요함이라고. 근데 여긴 한국임. 조용히!!!~~
얼어버린 강
한 시간 반동안 쉬지않고 떠드는 소리를 참고 도착한 강릉은 서울보다 따뜻했다. 괜히 얼어죽는줄 알고 두껍게 입고 왔는데 김이 빠진 모양새다. 빌려놓은 렌트카를 강릉역에서는 받을 수 없다하여 강릉시외터미널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강릉역이 생긴지 얼마 안되서 렌트카업체가 이 근처에 있지 않고 사람들로 붐비는 시간에는 가져다 주지 않는다.
'붐빈다'의 기준이 서울과 다른 것 같다
불편하고 돈을 손해봐도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렌트카업체 직원은 곧 분점을 내서 해결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또 다른 문제로는 '도로'다. 택시를 탔는데 정신없이 유턴을 두 번해서 길을 가신다. 짧은 길을 돈 벌려고 멀리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유턴을 짧게 두 번하는게 이상해서 여쭤보니 길을 잘못만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아니 길을 증말 이렇게 만들면 어떻게 하라는거에요? 사람들이 참 이상해요"
이 날, 택시를 두 번 탔는데 두 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역을 만들면서 도로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도로를 만들었다는게 공통된 의견이다. 생각해보니 이전에 강원도 자전거 여행때도 길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기차에 치어 죽을뻔했다. 강원도 공무원 문제인지 국토부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강원도 도로는 정말 문제가 있다.
그래도 택시기사분들이나 렌트카직원들이나 그런 불편함을 알고 소비자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서비스를 잘 해주시는게 보인다. KTX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하여 문제점을 매우 질타하신다. 시스템의 부재와 실패를 인적자원으로 메꾸는 전형적인 후진국 스타일의 문제와 해결방법이다.
강릉에 도착해서 차를 빌리고 처음 간 곳은 식당이다. 아침도 제대로 안먹고 나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밥부터 먹었다. 거금 들여 대게를 먹었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강릉 주문진 대게집, 테라스 제이
밥먹고 바로 이동한 곳은 대게를 사러 온 주문진 시장. 주문진항 바로 옆에 있는 주문진 시장은 레스토랑보다 거의 반 가격의 저렴한 가격으로 대게를 판다. 친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묵호항이 더 저렴하다고 하는데 왕복 기름값이 더 들지 모르므로 주문진에서 키로당 5만원으로 2키로를 구매했다. 물론, 김여사님의 흥정으로 더 받았다.
서울와서 먹었는데 개꿀맛 역시 대게는 산지에서 쪄와야한다
주문진 시장 주차장 옥상에서 보는 주문진항은 빨리 퇴근하고픈 아지매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그로인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주문진을 담을 수 있다
위에 새우탕으로 도망가려는 게 한마리
게 찌는 시간 20분여 동안 고등어도 사고 이것저것 봤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어디 앉을 곳 없나 둘러보다 2층에 커피숍이 있어 갔더니 아주 넓고 미술관처럼 잘 해놓았다. 이런 좋은 장소에 사람이 별로 없는게 조금 아쉽다. 거기에 사장님인지 작품과 시설, 상품을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해주셔서 나는 편히 쉬고 엄마는 이것저것 설명을 들으며 시간 잘 보냈다.
그냥 놀리기에 너무 잘 꾸며놓았다
그 다음 목적지는 한과마을.
대충 휙휙 들른 장소만 적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제대로 느끼신겁니다
오죽헌, 허난설헌생가 등 관광지는 이미 문을 닫았고 (가려고는 했지만 식사를 너무 오래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먹거리 쇼핑만 하루 종일 하다 집에 가게 되었다. 한과마을은 주문진 시장 2층의 아름다운 커피숍을 운영하는 분이 추천해준 교산한과로 정했다. 교산한과
관광지를 한 곳도 안가다보니 시간이 남아 돌았다. 여행의 마무리를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보내고자 커피거리로 갔다. 강릉에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는데 여기오니 조금 알겠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안목해변 근처의 커피거리에 있었다. 비록 어두워져 하나도 보이지 않는 바다였지만 그 어둠을 이용해 밝게 빛나는 등으로 커피가게들은 열심히 소리없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눈이오면 아이슬란드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날 것 같다.
하루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렌트카를 돌려주고 오는데 강릉시외버스터미널 앞에 택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다들 자기차례 기다리며 줄을 기다리는데 왠 취객이 택시 앞을 가로 막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짜증이 조금 난 상태인데 갑자기 내 뒤로 왠 중년의 남성이 새치기를 하면서 끼어든다. 딱 봐도 회사에서 차장이나 부장정도 되었을 사람인데 춥다고 중얼대면서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한다. 그 때 문득 들은 생각이 '강원도에서 올림픽을 치루기에 이 곳의 시민의식과 매너가 충분하지 않은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뭐 이제 올림픽을 치루는 곳의 시민의식과 치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걸 이전 대회들이 보였줬으니깐
몇 개의 사건으로 전체를 보는 것은 오류이니 내 생각이 틀렸을거라 생각한다.
강릉에 KTX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끊임없이 많이 오면 강원도에 대한 평가가 시작될 것이다. 지금은 리조트로만 사람들이 가지만 좋은 사람들과 깨끗한 환경, 맛있는 음식과 인상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없다면 제주도처럼 도시 사람들의 힐링 플레이스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리조트가기 편한 동네일 것이다. 오늘 하루 여행하면서 양쪽면을 전부 본 것 같다. 정말 성심성의껏 장사를 하시던 상인들과 택시기사들을 보면서 잘되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끔 뉴스로 보는 기존보다 몇 십배 비싼 방 값, 오늘 본 새치기하는 아저씨와 KTX에서 시끄러운 아저씨들을 보면서 망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올림픽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너무 심각하게 망하지만 않으면
올림픽 덕분에 KTX도 깔리고 도로도 재정비하는 등 인프라가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 강원도에 중요하다.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제주도처럼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면 좋겠다. KTX 한 번 타고 온 것 치고 너무 장황한 결말인듯
강릉 빙상장. 휑한 곳에 있기 아깝게 예쁘다. 강릉에는 아까운 장소가 좀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가 메달 하나도 못따도 좋으니 적자 안나게 해주세요
총평 : 이제 동해에 가서 잠깐 대게에 소주 먹고 올 수 있다. 아이폰X 사진 정말 잘찍힌다.
지도 위치가 잘못됐다. 이것도 바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