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시간동안 말도 많이하고 긴장도 많이한 탓에 도심으로 차를 타고 나올 때부터 배가 많이 고팠다. 게다가 걸어서 마요르 광장을 지나고 관광객답게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니 길 끝에 다다들 때쯤엔 허기져서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다.
루이스와 헤어질 때 루이스가 꼭 가보라고 한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 집이 얼마나 맛있는지 마치 자기가 먹는 것처럼 입 맛을 다시며 설명을 해줬다.
100% 마드리드 사람 루이스의 입 맛 다시며 추천해준 엔 부스카 델 띠엠포.
구글 지도에서 검색되지 않는데 가는 방법이 조금 까다롭다. 솔 역을 나오면 Comunidad de Madrid 건물이 나오는데 그 건물을 끼고 돌면 까레타스 길 (Calle de Carretas)이 나온다. 그 길을 걷다보면 오른편에 Zara가 보인다. 자라 반대편을 보면 더 작은 골목이 나오는데 그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돌면 바르셀로나 길이다. En busca del Tiempo는 그 길 오른편에 있다 (길이 짧아 바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 Comunidad de Madrid 건물 끼고 오른쪽 턴
- 직진하다 자라에서 왼쪽으로 턴
- 직진하다 첫번째 골목에서 오른쪽 턴
- 조금 걸으면 가게.
구글 맵을 쓰려면 "Calle de Barcelona, 4, Madrid, España" 를 검색하면 된다. 또는 아래에 걸어놓은 구글 지도 링크를 누르면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뱅글뱅글 돌면서 헤매다가 그래도 유럽사람인 티무르가 자기는 이런 도로로 주소찾기가 수월하다며 구글 맵을 키고 찾아냈다. 확실히 도로명 주소로 된 지역은 유럽사람들이 잘 찾는다. 그렇다고 최근에 갑자기 도로명 주소로 바꾼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좋다고 그러면 너무 확확 바꾸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사회를 바꾸지는 않을 것 같은데 참 대단하다.
처음 들어갔을 때 아래층에는 사람이 꽉 차서 윗층으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왠걸 아무도 없는 썰렁한 공간이 나왔다. 예사롭지 않게 셋팅되어 있는 와인잔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 잘못왔구나"
하고선 언제 아래층으로 도망갈지 의논했다. 최소한 별 4개짜리 호텔의 가장 큰 레스토랑의 지배인같이 격식을 차리는 웨이터가 옆에 서 있을 때 정말 이 집 모든 와인을 다 살 것처럼 진지하게 메뉴를 보다가 잠시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에
"Sorry~~, visit next time!!"
이라고 소리치고 후다다닥 아래층으로 도망갔다. 아무래도 우리가 하도 밍기적대니깐
"에휴 가라 가~"
하면서 봐준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와인잔들.
그래 이게 우리 스타일이지.
두 개의 레스토랑이 같은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1층은 펍 2층은 와인바이다. 물론 사람들은 전부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1층 펍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인심좋기 자리까지 안내해 준 곳을 뿌리치고 기어올라갔었다.
못 볼 것을 잠시 봤던 우리를 진정시키듯, 윗층과는 달리 행동이 뭔가 가벼운 웨이터가 와서 메뉴판을 보여줬고 맥주와 각자 먹을 밥(리조또와 알 수 없는 샐러드)을 시켰다. 스페인에 왔으니 당연히 스페인 맥주를 먹고 싶어 스페인 맥주를 달라고 했더니 산 미구엘이 나온다. 여지껏 산 미구엘 맥주가 필리핀 맥주인 줄 알았는데 원래 산 미구엘은 스페인 맥주란다. 마치 호가든을 오비맥주에서 만드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어찌됐든 난 진짜배기 산 미구엘을 먹는거다! 거기다 우리나라서 팝콘이나 땅콩을 서비스 안주로 주듯이 여기서는 하몽을 서비스 안주로 준다. 살다살다 햄을 서비스로 주는 곳은 또 처음 와 본다. 햄이 얼마나 많으면 하몽이 서비스인거지?
하몽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면 이 집을 오면 된다. (물론 다른 레스토랑도 같을거라고 예상한다.) 바로 우리 옆에서 웨이터가 예사롭지 않은 칼질로 하몽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저 장면을 보니 이상하게 맛이 더 있다. 나도 변태스럽다는건 알지만 실제로 보니 더 맛있는걸.
스페인 맥주 산 미구엘과 하몽
하몽은 이렇게 만든다.
메인요리인 리조또. 이 지역의 특유의 짠맛이 있어 아주 맛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곤욕스럽지도 않았다. 정말 그냥 먹기 알맞은 정도다.
셋이서 각자 두 잔씩 마시고 밥도 배불리 먹어서 이제 집으로 가려니 웨이터가 자신이 사는거라면서 맥주를 한 잔씩 더준다. 왠 동양인 둘이랑 희멀건한 슬라브 애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수다를 엄청 떨면서 자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리액션을 마구 넣어주니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술을 서비스로 주다니. 티무르는 러시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스페니쉬가 최고라고 한 오분동안 스페인 찬양을 해댔다.
또 감동받은 것 중에 하나는 서비스 무한 리필. 한국에서 감자탕 집에 외국인들 데려가면 아줌마들이 왠 허연 양놈들이 왔냐고 감자탕 먹는걸 신기하게 보시다가 서비스로 수육을 마를 새가 없이 계속 퍼 주시는데 스페인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인지 유독 우리한테만 하몽을 떨어지면 계속 채워줬다. 스페인이 우리와 문화가 많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이런 부분은 확실히 닮았다.
직접 웨이터가 시범까지 보여준 하몽 먹는 법. 내 입 맛에는 엄청 짜서 이 한조각에 맥주 200cc정도가 한 번에 들어갔다.
신나게 수다 떨고 엄청나게 배불리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스쳐지나간 전 세계 남자들의 로망,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마드리드 토박이가 알려준 마드리드 음식점의 느낌은 일단, 웨이터가 영어는 못해도 굉장히 친절하며 손짓 발짓으로 해도 전부 알아듣는다. 그리고 음식 맛은 유럽의 어쩔 수 없는 짠맛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 있는 맛이다. 맛이 강하기 때문에 맥주를 엄청 먹게 되고 맥주를 엄청 먹으면 서비스 맥주가 또 나오는 무한 맥주를 시전 할 수 있는 인심을 보여준다.
이게 웨이터의 차이인지 스페니쉬의 특성인지는 몰라도 레스토랑 자체는 엄청 유쾌하고 손님과 서버가 아닌 그냥 서로서로 친구같이 장난치는 곳 같다. 개인적으로 이 레스토랑은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다. 여지껏 와본 곳중에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가볍고 장난끼가 많은데 그걸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엔 부스카 델 띠엠포 레스토랑이었다.
물론, 내가 받은 서비스 못 받을 수도 있다. :)
숙소로 돌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