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다 빠졌는지 오늘은 정말 피곤하다. 결국 오늘은 동행 둘만 먼저 식사하러 가라고 보내고 나는 호텔에 와서 한숨 잤다. 한 시간 정도 잤을까 또 배가 고파져서 주섬주섬 챙기면서 티비를 틀었더니 마드리드에 데모가 일어났다. 스페인어를 몰라서 원인은 모르겠지만 지금 밖에 나가도 위험한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크게 데모가 일어났다. 뉴스에서는 이 일(뭔지는 모르겠지만)을 어떻게 풀어야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고 경찰관이 나와 뭐라뭐라 하는게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더구나 벌써 밖에는 뭣도 모르고 좋다고 돌아다니는 일행이 있다. 로밍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급한 상황 같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주임님. 지금 여기 데모하는데 빨리 오세요!!"
엥? 빨리 오라고? 뭔 소리하는거야?
나의 쓸데없는 걱정과는 달리 먼저 간 일행은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쳤다고 얼른 오라고 한다.
낮동안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어제와는 다르게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확실히 어제와는 광장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제는 관광객 위주였다면 오늘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규모 혹은 대규모로 모여있다. 어떤 그룹은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을 독려하고 다른 곳에서는 스페인어로 자기 주장을 힘차게 외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같이 박수를 친다. 걱정했던 것 보다 평화로운 분위기였는데 일행들 말로는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험악한 분위기였다고한다. 데모가 강경해지자 경찰이 일순간에 사람들을 차에 집어넣어 체포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나 스페인이나 데모도 경찰도 그 수위가 막상막하라고 생각된다.
나중에 루이스로부터 들은 내용이지만 데모의 원인은 복지비용을 정부에서 줄여 그에 반발한 데모라고 한다. 특히 대학 등록금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고 정부에서 복지정책만 건드리려고 하고 있기에 데모가 크게 발생했다고 한다.(이 내용은 루이스 개인이 한 말이니깐 사실 정확하게 원인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도 복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서 선거만 하면 복지 복지하는데 결과적으로 지켜지는 것 하나 없어도 참 조용히 잘 지낸다.
이렇게 마드리드 전체가 시끄러운 데모였지만(뉴스 자료만 보면 거의 폭동에 가까웠다.) 네이버 검색해보니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세상이 넓긴 정말 넓은가보다.
데모는 다 끝났고 남은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려는 분위기여서 더 볼 것 없이 어제 갔던 엔 부스카 델 띠엠포로 저녁 먹으러 다시 갔다. 다른 곳을 더 가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어제 종업원이 너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에 무리하지 말고 편히 있다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엔 부스카 델 띠엠포 메뉴판. 스페인어라 설명을 들어야만 한다.
주문하고 축 쳐져 있다가 밥 나오자마자 다 비워 버렸다. 심지어 음식을 찍은 여유도 없이 깨끗이 비워버렸다. 전부 스페인어라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웨이터에게 추천해 달라고 한 것을 먹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기가 막히게 입 맛에 맞는다. 참 대단한 능력을 지닌 웨이터다.
음식과 같이 마실 술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Spanish Traditional"
이라면서 시드라(Sidra)를 추천해줬다. 서로 말이 안통하지만 "Apple Alcohol"에서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런데 이 사과주 정말 맛이 괜찮다. 만드는 법에따라 시드라의 차이도 크겠지만 이 집에서 먹은 맛을 그대로 적는다면
- 시큼하다
- 끝 맛이 부드럽다
- 주스같다
- 마시고 나면 술인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보통 술과는 다르게 시드라만의 독특한 따르는 방법이 있는데 그 퍼포먼스가 너무 멋있어서 세 번인가를 더 시켰다.
시드라를 먹고 일어나려고 하니 어제도 오고 오늘 또 와서 고맙다고 또 서비스를 준다. 게다각 이번에는 스페인 브랜디라며 스페인 술이 최고라고 말한다. 자기 것까지 네 잔을 만들어 와서는 각자 자기네 나라 말로 건배사를 외치고 원샷. 이 집에선 음식이나 술 사진을 찍을 겨를을 절대 안준다.
이 술은 정말 독해서 "크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독한 술의 맛은 잘 몰랐지만 술에 취했는지 웨이터와 장난치는 신나는 분위기에 취했는지 기분좋게 만들어 준다. 덕분에 한 명은 만취가 되어 쓰러졌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