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세부 시티
"오실 때 면세품은 껍데기를 다 벗기고 배낭에 잘 숨겨서 들어오셔야 세관에 걸리지 않습니다."
난 이게 뭔소리인가 했다.
세부에서 묵기로한 오션블루 리조트 사장님이 전화로 해 주신 이야기인데 이 말이 세부를 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지 오기 전까지 몰랐다. 크리스마스도 넘어가고 하고 써야할 신용카드 포인트도 있고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마 가방 하나 사드렸는데 380$정도 하는 핸드백이다. 알다시피 핸드백은 형태가 찌그러지면 쓰기가 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배낭에 찌그러트리지 않고 살짝 숨겨서 (결정적인 실수로는 Duty Free 백을 버리지 않았다) 세관 앞에 갔다.
왠걸 DUTY FREE백을 발견하더니 거기 붙어 있는 영수증에 가격을 가지고 세금을 물린다.
"148$"
'뭐 이 미친놈아? 380$ 가방에 140$을 세금으로 매긴다고? 너같으면 사겠냐?'
라고 생각하고 그 때부터 되는 영어 안되는 영어 모든 수단 다 써서 배 째라 스킬을 시작했다.
"나 돈 없어"
"그럼 70$"
"아니 진짜 돈 없어. 나 그 세금 내느니 다시 서울로 돌려 보낼래. 이거 다시 환불할래"
"그럼 40$"
"내가 방콕갔다가 네팔가야하는데 너가 40$ 가져가면 나 네팔에서 아무것도 못먹어!!"
"너 엔지니어네? 엔지니어 돈 많아 안돼"
"야!! 나 빚 엄청 많아!! 너 서울 집 값 몰라?"
"안됨 ㅋ"
이러기를 15분간 반복… 얜 안되겠다 싶었는지 다른 사람을 먼저 한다. 그렇게 한 숨 쉬며 30분. 새벽 세 시를 확인하니 '이러다가 리조트 못가는거 아닌가..' 란 생각이 들어 돈 안내고 나가는건 포기했다. 큰 돈들은 전대에 다 넣었으니 좀만 더 깎자 생각하고
"야.. 그럼 20$에 하자. 나 진짜 돈 없어. 나 네팔서 점심은 먹자. 20$ 콜?"
"………………………… 아 안되는데… 기다려봐"
(지들끼리 숙덕숙덕)
"그래 20$에 하자"
아 진짜 욕이 절로 나온다. 돈 주는데 지갑 보더니 "돈 많네~" 라면서 실실 쪼갠다. 아놔.. 밤새도록 싸워볼걸 그랬나. 리조트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그나마 싸게 한거라고 한다. 세부에 올 때는 영수증이고 케이스고 다 비행기에 버리고 물건만 캐리어나 배낭에 그것도 원래 사용했던 것처럼 가지고 내려야 한단다.
전 세계 어디든 깎을 수 있는 세금이라면 그건 세금이 아니라 공무원들끼리 나눠 먹는 돈이다. 그 생각하니 더 아까웠는데 나 말고도 신나게 신혼여행 온 커플들이 줄줄이 세관에 걸렸다. 신혼여행 커플은 세부 공항에선 최고의 먹잇감이다. 즐거운 분위기 안망치려고 돈도 잘 내신다. 다시 말하지만 깎을 수 있는 세금은 그냥 공무원 용돈이다. 여행사에서 이런 걸 알려줘야 할텐데 알려주지 않으니 행복해야할 신혼여행이 시작하자마자 짜증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가 부모님 선물 등 살 물건이 많다면 아예 선물을 국내에서 사서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항.
그럼 과연 이게 필리핀만 이런 것일까?
절대 아니다.
일단 동남아나 중국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한다. 또한 우리나라도 외국인을 상대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결국 쓰던 것처럼 보이는 것만이 답이다. 그럼에도 내가 얘네한테 화가 난 이유는 필리핀은 바로 면세국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면세인 물건은 필리핀 공항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갈 때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공항에 맡길 수가 있는데 한국행 비행기가 대부분 밤에 출발하여 거의 잃어버린다고 보면 된다. (비행기가 밤에 있으면 찾아 주지 않는다)
이게 2013년 1월 1일 처음 겪은 일이다.
액땜했다 해야하나...
세관 통과할 때의 팁
1. 다른 사람 선물은 사지 않는다. 케이스까지 포함한 포장을 전부 뜯어 버리고 좀 사용하고 줘도 된다면 괜찮다. 사실,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2. 케이스를 포함한 모든 포장지와 영수증은 기내에서 모두 버린다.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한다.
3. 마치 계속 쓰던 물건처럼 한다. 핸드백 안에 잔뜩 화장품이랑 잡다 한 것을 넣던지, 선그라스를 쓰고 들어가던지 하는 방법
4. 술도 일단 다 까고 기내에서 한 잔 마시면 될까? 이건 모르겠다.
5. 세관 신고서에 적는 직업란은 전 세계적으로 돈이 잘 안벌리는 것으로 한다. 학생? 농부? 어부? 광부? 뭐 이런거면 괜찮지 않을까? 내 경우 엔지니어라고 썼다가 돈 많은 놈 됐다. 한국에서 무시 받은 엔지니어의 고충을 필리핀에서 풀었다. 우러러 봐주시더만 돈내라고…
6. 한국 나갈 때 산 면세품은 돌아올 때 100% 걸린다. 내가 산 품목은 전부 전산처리 된다.
왼쪽에 롯데 라고 보이는게 문제의 수화물
어찌됐든 우여곡절 끝에 첫 숙소인 오션 블루 리조트에 도착했다. 새벽 4시. 경비 아저씨도 자고있는 (사장님이 경비가 잔다고 한숨쉬고 슬퍼하시던...) 새벽.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