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관광을 마치긴 했지만 사실 어제 그렇게 술을 먹고 관광을 제대로 하기란 무리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관광하는 내내 표정이 어두웠고 사실 관광보다 뭔가 뜨끈한 김치찌개나 콩나물 해장국이 필요했다. 오늘 다들 각자의 스케쥴에 맞게 이동해야해서 왓포를 보고 헤어질 계획이었지만 속도 안좋고 이렇게 헤어지기도 아쉬워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가는 걸로 했다.
그렇게 이동한 시장... 뭣 모르고 일단 아무거나 대충 시켜서 먹었다. 하지만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속이 뒤집힌 상태에서 넘어갈 음식들이 아니다. 아무리 꾸역꾸역 넣어도 김치찌개가 더 생각날뿐... 게다가 여기 주인 아줌마 엄청 무서웠다. 해장은 전혀 안되고 속만 오히려 더 안좋아졌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속을 편하게 해준 무심코 산 이 과일. 진짜 맛있었다. 이름이 뭐더라.. 하여튼 태국에서 해장이 하고 싶으면 과일을 추천한다. 이상한 덮밥보다 과일을 한 무더기 사서 먹으면 수분도 보충되고 금새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짐찾으러 가는 길은 툭툭으로 갔다. 짐 찾으러 돌아온 카오산 로드는 어제 밤과는 사뭇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일행들과 헤어지고 나는 짐을 짊어지고 후아람퐁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뭘 탈까 고민하다가 시간도 별로 없어서 또 툭툭을 타고 이동했는데 툭툭타는 것을 좀 삼가해야겠다. 택시보다 더 비싸고 뭔가 계속 바가지 쓰는 기분이다. 게다가 러시아워에 딱 맞아 떨어져서 기차 출발 시각에 맞게 도착할지도 의문이었다. 서울이나 여기나 차 막히면 답이 없다. 아니 서울보다 차막혔을 때 짜증나는건 방콕이 더 심한 것 같다. 서울은 도착지를 예상하니 포기를 하든 기대를 하든 하겠는데 이건 내가 어딨는지 모르니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그렇게 마음 조리면서 가는데 운전사의 미친듯한 오토바이 실력으로 완전 넉넉하게 기차역에 도착했다. (중앙선 넘는건 기본이고 인도로도 다니더라...) 급할 땐 툭툭이다. 내가 툭툭을 의심하다니...
여기서 여행자에게 씌우는 바가지를 알아보자면 대개 4배 정도 더 받으려고 한다. (필리핀은 20배 걔넨 진짜 사기를 치려 함) 그리고 어느 정도 디스카운트가 가능한데 2배까지는 잘 깎아 준다. 그리고 혼자 이동하는 것보다 같이 이동 하는 것이 1인당 가격을 더 줄여준다.
우리 입장에서 비싼 가격은 아니기 때문에 별로 문제 될 것도 없는데 제 가격 내고 못 탄다고 짜증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여행와서 눈탱이 맞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미터를 꼭 키라고 요구하지만 미터를 키면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고 어짜피 아까운건 똑같다. 그냥 어느정도는 눈탱이 맞고 돈 더 내는게 나는 좋다고 본다. 단지 좀 더 재밌게 하기 위해 툭툭 사람들 모아서 경매를 하던가 웃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등의 노력을 한다면 그들도 사람이기에 웃으며 자신의 욕심을 조금 낮춘다. 그리고 여기와서 들으니 한국 택시도 바가지로 악명이 자자하더라. 어짜피 그 직업은 그런갑다 하고 포기하는게 편한 것 같다.
날 치앙마이로 보내 줄 티켓. 6시10분 출발 8시15분 도착. 이동하면서 숙박도 해결되는 놀라운 기차표다. 괜히 스페셜 익스프레스가 아니다.
후아람퐁역 도착!
시간만 넉넉하다면 저기 티켓이란 곳에 가서 직접 표를 사고 관광을 하러 다니면 되지만 초행길이고 하니 여행사 통해서 표를 구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맘이 편하다. (2013년에 동대문을 통해서 구입한 표 가격은 985바트였다. 1층 침대석)
내가 탈 기차 도착. 자고나면 이 팻말이 치앙마이로 바껴 있겠지.
보다시피 메뉴다. 직접 갖다 주는데 기차라서 그런지 비싸다. 물도 사서 먹어야 하므로 탈 때 챙겨야 한다.
내가 탄 기차는 침대칸이었는데 1층과 2층을 지정할 수 있다. 이 때 1층으로 지정하는 편이 좋다. 2층은 더 좁다. (1층이라고 넓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일반 기차와 똑같이 앉아서 가다가 한시간 정도 지나면 승무원이 왔다갔다 한다. 앞에 앉은 사람한테 "Excuse me, I want to sleep"이란 밑도 끝도 없는 명령어를 내뱉으면 오케이라면서 자리를 비켜준다.
승무원이 침대칸으로 셋팅!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할 필요도 없이 편안했다. 근데 키가 엄청 큰 사람이면 다리를 완전히 쭉 피지는 못할 것처럼 보인다. 짐은 옆에 보이는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옆에 묶어두고 뻗어버리면 된다. 어제의 숙취도 있고 너무 피곤해서 기차에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는데 같이 앉은 외국애들이 지들끼리 막 떠든다. 영어인가해서 들어보고 있었는데 뭔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 영어실력이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앞에 여자 애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왔다.
"오! 안녕하세요"
어라? 얘 왜 한국말 하지라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셋이 웃으며 설명해 줬다. 이 친구들은 네덜란드에서 온 보스, 엘레나 그리고 이름을 까먹었지만 너무 잘생겨서 내가 '모델'이라고 부른 애까지 여행을 다니고 있단다. 자기들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는데 모델은 혜화살고 엘레나는 성신여대 살고 그렇단다. 와.. 성균관대학교가 갑자기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안타까운건 내 컨디션이 너무 않좋아서 말을 별로 안했다는 것. 만사형통이라고 적힌 카드를 보여주며
"이거 그림이에요 문자에요?"
라고 하길래 말도 안되는 영어로 설명해 주고 한국 음식점 가서 이모라고 하면 좋아할거라고 알려주고 그러다 난 쓰러져서 잤다. 이것도 인연인데 사진이라도 찍어놓을걸... 아니 영어만 좀 되었어도 ㅠㅠ
사진은 흔들리게 참 못찍었네...
2015년에 update
태국 친구들에게 기차로 여행가자 했더니 살인사건이 벌어져서 무섭다고 싫다고 한다. 아주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유럽애들처럼 여자가 남자 하나 제압할 수 있다면 모를까... 조심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