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가서 한국 사람 만나고 싶을 때는 어디를 가면 될까? 이건 태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통용될 것 같은데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이나 책 펴놓고 읽는 동양인 여자 (음.. 동북아시아인이라고 해야하나..) 가 있다면 거의 백프로 한국인이다. 그래서 나처럼 계획도 없고 같이 다니는 사람도 없는 한국 여행객들은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한국말이 들리는지와 혹시 한국여행책을 보는지 눈여겨 보다보면 일행을 얻게 된다.
치앙마이와서 계속 혼자 돌아다니니 이제 혼자 있는 것이 슬슬 외로워졌다. 그러다 우연히 커피숍에 들어가서 굉장히 재밌고 한국가서도 좀 만나고 싶은 일행들을 만나는 대박 사건이 터졌다.
우선 태국 커피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태국에는 스타벅스도 유명하지만 로컬 브랜드인 도이퉁과 도이창이라는 커피 브랜드가 있다. 한국사람들이야 태국가야 처음 듣는 브랜드이지만 대부분의 여행책에서 이 두 커피 브랜드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태국에서는 알려진 커피 브랜드이다.
특히나 도이퉁 커피는 골든 트라이앵글로 유명한 마약 재배지인 지역을 변화시키고자 현재(2013년) 국왕의 어머니가 고산족 주민들에게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마약 재배하던 주민들의 대부분이 고산족인가보다) 마약대신에 커피를 재배하도록 한 뒤 거기서 나오는 커피에 브랜드를 입힌 것이다. 책에 이렇게 의미있게 써줬는데 안 마시러 갈 수가 있나.
치앙마이의 압구정(제가 어릴 때는 압구정이 세련됨의 극치여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라 할 수 있는 남민해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도이퉁이란 이름이 보여서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커피 가격이 태국치고는 꽤 비쌌는데 왕실에서 하는 사업이다보니 이익금이 전부 고산지대 주거환경 개선등에 쓰인다고 해서 없는 돈에 꾸역꾸역 마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나랑 뭔 상관인가 싶다..) 가격은 아메리카노가 60밧 한국 돈으로 2000원 정도이다. (한국와서 보면 정말 싼 가격이다) 사실 커피 맛을 잘 몰라서 아주 맛없지만 않으면 괜찮은지라 맛있게 마시고 있는데 한쪽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혼자 다니기도 좀 지치고 해서 쪽팔림을 무릎쓰고
"저......... 같이 떠들어도 될까요?"
라고 하여 교사인 누나와 교사인 여자동생 그리고 나처럼 쉬러 온 남자동생 셋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긴 시간 내서 여행하는데는 교사란 직업만 가능한 것 같다. 방학기간이긴 하지만 난 겨우겨우 퇴사하고 잠깐 짬나서 온 곳인데 교사들한테는 뭔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는 곳 같이 느껴진다.
도이퉁 커피에서 의기투합하여 하루를 같이 보내기로 한 넷은 우선 치앙마이 대학교로 이동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태국내에서 1,2위하는 대학교가 바로 치앙마이 대학교인데 여기 합격하면 한국서 서울대 합격한 것처럼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역시 캠퍼스답게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전달되어진다. 특이한 점은 우리가 갔을 때가 졸업과 입학 시즌이었는지 졸업 가운을 입고 사진 찍는 사람들과 이름표같은 것을 목에 걸고 노래를 부르는 무리가 눈에 띄었다.
한국과 달리 태국은 졸업사진을 찍는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사를 개개인이 고용해서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가뜩이나 졸업사진 비리로 말이 많은 한국에서 시도해 볼만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신입생들처럼 보이는 무리가 정말 장송곡에나 쓰일 것 같은 노래를 우울한 목소리로 선배의 지도하에 불렀는데 그냥 누가 듣더라도 송별가처럼 들렸다. 그거 보니깐 갑자기 전람회의 '졸업'이 떠오르네...
그 뒤로 이동한 곳은 왓 쑤언독이다. 태국의 사원을 가서 쩨디(불탑)를 보다보면 전부다 금색으로 도금을 한 것들이 가끔씩 보인다. 그렇다면 그 쩨디는 부처님의 사리나 머리카락이 모셔져 있는 곳이며 어김없이 그 곳은 유명한 관광지이다. 왓 쑤언독에도 그러한 쩨디가 하나 있는데 이 쩨디는 낮에 보는 것보다 석양이 질 무렵에 보는 것이 운치가 더 있어서 사람들이 저녁에 많이 찾는 곳이다.
왓 쑤언독은 옛날에 고승을 모셔오기 위해 사원을 꽃으로 장식을 했다 하여 '꽃의 사원'이라 불릴 정도로 정원을 잘 갖춘 곳이다. 그리고 그 덕에 저녁에 모기와 온갖 벌레들의 환영을 받는 곳이다..
본당 건물은 굉장히 크다. 다른 사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내부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줄 알고 갔더니 공사 중이어서 진입 불가. 총총히 발길을 옮기며 이 얘기 저얘기로 수다를 떨며 금색 쩨디가 있는 곳으로 이동 했다.
멤버들
왓 쑤언독에는 왕가의 무덤이 있는데 전부 하얀색으로 칠이 되어 있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해질무렵에 갔더니 더 으시시한 분위기였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저녁 노을에 비춰지는 금색 쩨디의 모습은 정말 입이 벌어진다. 물론 진짜로 입을 벌리면 벌레가 들어가겠지만..
난 내일 치앙마이 트래킹을 1박 2일로 떠나야 하기에 같이 저녁에 맥주도 곁들이고 (이 와중에 우리가 어느나라 사람인지 내기하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나이트 바자도 같이 가서 누나의 놀라운 아줌마 깎기 실력도 보고 헤어졌다. 본의 아니게 수다스럽게 놀았는데 말이 정말 하고 싶었나 보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이 좀 더 많이 느끼고 보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만큼 내가 왜 혼자 이러고 있는가와 말하고 싶은데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 고통은 참아야 한다. 시간이 흐를 수록 혼자 가는 여행은 나한테 안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