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차만 타면 입벌리고 자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앞자리에는 가급적 앉지 않고 뒷자리에서 완전 딥슬립을 시전한다. 그게 얄미웠던지 꿍이 자기가 잘테니 운전해 보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한국이랑 핸들이 반대여서 죽을지도 몰라~"
라고 했더니 소리를 지르며 분노의 가속을 시작한다. 태국이든 한국이든 여자 화나게하면 좋은 꼴을 못본다.
차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슈퍼에 가서는 형광등을 한 다섯개 사왔다.
'설마 치앙마이가 형광등이 싸고 좋은가?!' 하고 나도 사야되나.. 집에 가져갈 수 있으려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음 절에 가더니 주지스님에게 기부했다. 당연히 기부는 남자인 내가 직접 전달했다. 이걸 왜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물어봤더니 절에서 필요한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 신도들이 보고 찾아가서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일종의 공양인데 인터넷으로 한다는 점이 색달랐다.
도착한 절은 정말 동네 절 같은 곳이었는데 특이하다면 특이한 것이 주지 스님이 장님이셨다. 사실 살면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많이 못만나서 혹시나 방해될까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느낌이 오셨는지 스님도 대표 질문인 "Where are you from?"을 물어보셨다. 나도 태국어 써먹어 보려고 태국어로 코리(태국어로 한국)라고 했더니 "I am 닉쿤 in Thailand!!" 라고 하신다. 눈이 안보이셔도 유쾌한 것만 봐도 주지스님 법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단순히 물건만 공양하는 것은 아니고 공양 후에 일종의 축복같은 의식도 해주신다. 뭐를 빌고 싶으냐고 해서 가족 건강이랑 여행이 재밌게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했더니 태국어로 뭐라뭐라 하시고 손에 실끈을 묶어주셨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제 신의 가호까지 받았으니 이번 여행 걱정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