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페인에 왔다. 여기 오기까지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새벽에 도착해서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서 밖을 보니 아무것도 없이 휑~ 하다. 새로 지은 호텔이라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은가 모르겠다.
계속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을 만큼 피곤했지만 관광하라고 보내준 것이 아니라서 또 출근 준비하고 일하러 나갔다. 계속 사람들을 만나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여기 사람들이 다들 적극적이고 말이 많아서 다른 출장보다 훨씬 편하게 일 할 수 있었다. 특히 놀랐던 부분은 점심시간. 1시 30분 정도부터 밥을 먹었는데 3시가 되어도 다들 폭풍 수다와 식사로 오후에 예정된 일들을 스르륵~ 하고 사라진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시에스타인가! 너무 좋다.
7시쯤 정리하고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같이 온 연구원과 러시아 직원인 티무르까지 포함하여 마드리드 관광 겸 저녁 식사를 하러 마드리드 시내로 갔다. 우리 호텔에서 꽤 멀었지만, 스페인 직원인 루이스가 고맙게도 도심까지 데려다줬다. 물론, 차 안에서 1시간 정도는 루이스의 수다를 들어야만 했다.
꽉 막힌 마드리드 도로를 가까스로 뚫고 루이스가 추천한 '마드리드 단기 정복 코스'를 짧게 설명을 듣고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처음 온 출장이라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머리가 꽉 차서 막상 마드리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왔더니 지도를 받아도 뭐가 뭔지 한 개도 모르겠다. 이럴 때는 조용히 다른 애들 믿어야지. 티무르가 두 시간 정도 루이스랑 수다 떨고 다 알았다고 자신 있어 하니깐 오늘은 얘만 따라다니는 거다.
마드리드 토박이가 "여기만 보면 마드리드는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야"라고 자신있게 말해서 일단 "오케이! 오케이! 그레이트!"라고는 했지만 봐도 전혀 모르겠다. 이럴 땐 일단 찍고 돌아가서 소 마냥 되새김질하는 것이 최고다. 그러기 위해서 무한 사진 촬영으로 최대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지도 맨 왼쪽에 크게 그려진 성부터 오른쪽에 제일 크게 그려진 성까지 이동하는 코스다. 역시나 토박이의 조언인가 나중에 한국 와서 보니 꽃보다 할배에도 이 코스를 걸었다. 막상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한국 와서 뿌듯한 이상한 관광이다.
알무데나 대성당.
우리가 첫번째로 목적지로 정해 놓은 곳은 플라자 마요르 (마요르 광장)이다. 지도에서 Calle Mayor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플라자 마요르는 마드리드 역사답게 사건 사고가 많았던 곳이다.
그 첫 번째 나오는 갈림길에 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동상과 건물. 뒤편에 있는 건물은 Iglesia del Sacramento 영어로는 Church of Sacramento이다. 찾아보니 군인을 위한 성당이란다. 우리로 따지면 국군 성당쯤 된다. 뭣도 모르고 찍어대다 얻어걸린 것이 이 사진인데 나는 뒤에 있는 건물이 특이해서 찍었지만, 오히려 역사적으로 더 유명한 것은 그 앞에 있는 이 동상이다.
1906년 5월 31일 알폰소 13세와 황비인 빅토리아 유지니아를 살해하기 위해 행해진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상이다. 위키피디아로 검색하니 테러가 황제와 황비의 결혼식 날 벌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하고 많은 날 중 결혼식 날을 선택했을까.
그 때 찍은 사진이다. 이 때 왕족은 너도 나도 죽이려드는 파리같은 목숨이었나보다.
역사적 사건과 현재를 한 장에 보여주는 사진. 나도 이런 사진 만드는 법 좀 배우고 싶다.
명명된 사건의 이름을 테러라 부르기 때문에 테러라고 적었지만,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투사로 생각될 것 같다. 축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 텐데 이 테러 사건이 그 원인 중의 하나이다.
마드리드를 관광하다가 재미난 것들이 많은데 이 관광객들도 그중 하나다. 도시 관광을 세그웨이를 가지고 하다니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다. 게다가 가이드는 중세시대 옷을 입고 있다. 우리로 따지면 한복 입고 세그웨이 타면서 경복궁을 다니는 것인데 상상만 해도 재밌어 보인다. 나도 이런 거 타고 좀 편히 다니면 좋겠는데 다리가 벌써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