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나고야성과 오스시장 보고 시간에 쫓겨 조마조마하게 기차를 타고 두 시간동안 기차타면서 밥먹고 밖을 구경했더니 맨날 앉아만 있던 몸이 비명을 지른다. 그 몸을 뜨끈뜨끈한 온천물에 푹~ 담그니깐 정말 살 것 같다. 이제 구경같은거 말고 그냥 물 속에 누워만 있으면 딱 좋겠다.
게로 온천물은 담그고 나면 피부가 뽀얗게 되는 것으로 유명한게 신기하게도 온천물에 잠시 세수만 한 뒤에도 피부를 문지르면 기름두른 것처럼 맨질맨질해진다. 거참, 신통한 온천물일세.
온천은 끝내고 방에 널부러져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오늘의 저녁인 카이세키(Kaiseki, 懐石) 요리를 준비해 주는 종업원이
"Are you ready?"
라고 묻는다.
슈어(Sure)!! 슈어!! 배고파 죽겠어요!!
우선, 우리를 카이세키 요리의 세계로 인도해 줄 종업원이 밥상을 쓱쓱~ 닦는다. 참고로, 이 곳의 카이세키 요리는 전담 종업원 한 명이 옆에서 간단한 조리와 서빙 및 설명을 모두 한다.
식전주
정리가 다 되면 기본 셋팅을 한다. 가운데는 소화를 돕기 위한 매실주이다.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매실주를 식전주로 한 잔 한다.
이 목록이 오늘의 카이세키 요리 순서이다. 영어나 한글로 된 목록도 있었으면 오늘 요리에 대해 이해가 더 높았을텐데 아쉽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쉐프님은 요리가 나올 때 마다 전부 다 뭐냐고 물어보셨다. 진짜 먹어보고 물어보고 맞췄다고 좋아하고를 식사 내내 하셔서 팁을 많이 드릴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해~
카이세키 요리는 원래 저녁 식사가 아니라 일본 다도 즉, 차를 마실 때 곁들여서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양이 많이 나오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여러가지 스타일의 카이세키 요리가 있고 각 료칸이나 음식점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카이세키를 가지고 있어서 이제 더이상 차를 마실 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이탈리안 음식처럼 일종의 음식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료칸에서는 실내 시설만큼이나 각자의 카이세키 요리가 그 집의 자존심처럼 굳어지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내 느낌이지만 카이세키를 넣고 안넣고에 따라 가격이 거의 두 배로 뛰며 종업원에게 카이세키에 대해 물어봐도 우리 료칸의 요리가 가장 맛있다고 진심으로 말한다.)
료칸이라서 그런지 술과 음료의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다. 그래도 비싼 돈 내고 먹는 요리인지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사케와 우롱차를 하나 시켰다.
첫 번째 요리
첫 번째 요리
보면 알겠지만 깔끔함과 정갈함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안에는 밥이 들어 있다. 나뭇잎을 이용해서 찜을 하는 것이 신기하다. 밥을 맛보면 나뭇잎 향이 정말 깊게 배여서 독특한 밥을 먹게 된다. 밥은 오래 뜸을 드려서 첫 번째 셋팅이 아닌 후에 먹는다.
빨리 먹고 싶어서 포커스고 나발이고 일단 누르고 봤다.
끝판왕 등장
이녀석이 오늘의 메인인 와규 샤브샤브다. 게로에 올 때 온천만 알고 왔는데 이 지역은 특산물로 소가 맛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료칸마다 소고기를 파는데 마블링 보면 알겠지만 맛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맛은 기억 안나고 가격은 기억이 날만큼 정말 비싸다.
두 번째 요리
필터를 적용했더니 음식이 강렬하다!
두번째 음식인 사시미와 사케, 우롱차. 샤브샤브를 아직 다 먹지도 않았는데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회가 나온다!! 사케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우롱차다. 엄마가 완전히 빠져서 한국에 꼭 좀 사가지고 가자고 당부를 했을 정도다.
이건 생선을 맑게 끓은 국물인데 내 스타일은 아니다. 어떤 생선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비린 맛은 싫어하는데 딱 그 맛이다.
샤브샤브 소스.
이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떡인지 밥인지 헷갈리게 하는 나뭇잎 찜밥이다. 나뭇잎 향이 은은하게 배어있으며 씹을 때 쫀득쫀득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무난무난한 사케다.
세 번째 요리
이제는 본격적으로 밥과 반찬과 디저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전 요리들은 일상에서 보기 힘든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왠지 매일 일본 사람들이 먹을 것 같은 음식들이 나온다.
생선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렇게 발라 먹을게 많지는 않다. 게다가 두 번째 라운드를 넘어가니 이제 배가 슬슬 불러오기 시작한다.
해체된 생선을 뒤로 한채 나온 살구 샤베트. 디저트인줄 알았는데 디저트가 아니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맛이라도 봐야해서 꾸역꾸역 먹었다.
일본 미소 된장 국과 밥. 가장 일반적이고 가정적인 일본 음식이 마지막에 나왔다.
입 가심용 차.
드디어 진짜진짜 마지막 음식. 디저트. 흑설탕으로 만든 것인지 정말 달았다. 따로 이름이 있는 고유 음식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음식을 하나하나 먹을 때 마다 엄마가 종업원한테 뭐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계속 물어봐서 종업원이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나 난감해했다. 그래도 구글 번역기 덕분에 거의 다 설명을 해줘서 집에서 해보겠다는 세프의 욕망을 채워줬다.
한 번 먹어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음식의 퀄리티는 생각보다 뛰어나진 않았지만 옆에서 내가 먹는 속도에 맞춰서 서빙을 해주는 것과 다양한 음식을 한 번에 맛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다기 보다 음식을 이용한 종합적인 예술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여기서 뛰어나지 않다의 의미는 가격대비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지 맛없다는 것은 아니다.
가격대비 뛰어나지 않은 이유가 김쉐프님의 생각으론 '일본에서 먹은 음식들은 전부 비슷한 맛이어서(도전적이지 않아서 라고 표현했다) 아주 별로인 집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집은 없는 것 같다' 라고 정의하셨다. 그에 비해 한국은 조리법과 그 반대로 극과 극으로 치닫지만 대신 엄청나게 맛있는 집도 있는게 차이점이라고 한다.
이 카이세키 요리만큼은 집마다 내세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맛있는 집을 찾는 과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럴려면 한 끼에 십만원이 훌쩍 넘는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어야하기에 불가능에 가깝지만 돈 많아서 무감각한 부자들의 취미 중 하나는 될 수 있어 보인다.
이러나 저러나 결론은 꼭 와서 먹어보라는 것이다. 여러번 먹기는 힘들겠지만 여행 와서 하루 정도는 먹을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사를 다 마치고 쉬고 있으면 침구를 깔아주는 사람들이 와서 침구를 깔아준다. 자기들끼리 기합도 넣으면서 침구를 까는데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을 굉장히 진지하게 한다.
진지한 아저씨 두 명이 깐 침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푹신푹신하고
눕자마자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