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한인 면세점
일도 일찍 끝났겠다 선물 사들고 귀국할 생각에 면세점을 들렸다. 오기 전부터 화장품 좀 사오라고 주문 받은 것도 있고해서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면세점으로 갔다. 내가 못찾는 것인지 시드니 안에 일반적인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현지인이 하는 면세점을 못찾겠다. 롯데면세점이나 신라면세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촌놈이 또 헛물켰다. 외국나가면 한국인 조심하라던데 여기는 괜찮은가.. 걱정부터 된다.
위치는 시드니 시내 한복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척척가야 하지만 시드니 오기 전에 이 동네 공부도 하나도 안하고 즉흥적으로 다니자니 저녁에 용완이를 만나기로 해서 가장 쉽고 힘든 도보를 택했다. 이제는 하도 걸어다녀서 그런지 30분 거리는 그리 힘들지도 않다.
도착하고 보니 살 만한 품목은 좀 있는 것 같다. 한국 면세점답게 점원들이 전부 한국인이라서 의사소통은 전혀 문제없다. 호주에서 이 제품들을 어디서 파는지 모르니 가격 비교는 하기 힘들고 같은 이유로 어디서 파는지 찾아야하는 고생과 비용들을 빼면 쇼핑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혼자 왔을 때의 이야기고 단체 관광으로 올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한국 사람이 하는 곳이라서 꺼림직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공항에서 면세 물건을 사도 된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이 낫다. 들은 바로 호주 공항 면세점은 비싼 걸로 유명하다. 차라리 이것저것 불편하면 그냥 속편하게 백화점을 가는게 나아 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양털관련 제품이다. 한국에서도 호주 양털은 유명하다보니 집에서 올 때 양털 이불을 하나 사오라고 주문이 떨어졌다. 하지만 소심하기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나로서는 이게 진품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덜컥 비싼 돈 주고 사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종업원들이 하도 옆에서 이야기하니깐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져서 더 가짜처럼 보였다. 그래서 결국 친구에게 긴급 질문.
"야, 여기 한국 면세점에서 양털 뭐시기 파는데 진짜일까?"
"어, 사, 호주서는 가짜 만드는 인건비가 더 비싸. 눈탱이는 맞을 수 있어도 가짜를 팔진 않아."
반박할 수 없는 논리적인 설명으로 인해 양모이불 구매.
이 매장에서 가장 살만한 '데나 에센스'. 이것이 그 유명한 '안 사 가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사가는 사람은 없다.'는 양 태반 크림이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강식품과 화장품이다. 그런데 건강식품의 경우에는 집에 와서 먹어보니 별로 효능도 모르겠고 오히려 먹고 속이 안좋아서 잘못 사왔다고 후회 중이다. 게다가 의사놈한테 물어보니 '모든 건강 보조제는 지갑만 노린다.' 라는 소리만 들었다. 차라리 소고기 스테이크나 더 먹을걸...
그에 비해 양 태반으로 만든 화장품은 엄청난 호응이다. 엄마 한 통 줬다가 언제 또 출장가냐는 압박까지 받고 있을 정도다. 내가 발라봐도 에센스랑 크림 바르니깐 얼굴이 반질반질해지더만. 설마 뭐 수은이나 이런걸로 하는건 아니겠지?
그리고 살만한 품목으로는 꿀이 있다. 가격도 선물용으로 싸서 (만원 정도) 친구들한테 인심쓰듯이 하나씩 나눠주기 좋다.
면세점 방문 후 들은 생각
내가 어릴 때 깃발관광 갔을 때 이런 면세점이나 이상한 보석 상점에는 꼭 들리게 했다. 다들 예상하는 관습때문인데 이런 경우 눈탱이를 꼭 맞는다. 요즘도 그런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전에 태국에서 마사지업하시는 사장님도 발리에서 서핑 강습하는 사장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요약하자면 여행사에서 오면 소개비를 너무 요구해서 난감하다는 것인데 하자니 사기치는 것 같고 안하자니 어떤 불이익이 발생할지 모르고 정말 싫다고 나지막히 이야기하신 것이 기억난다.
오늘 간 곳은 나같이 혼자 온 사람들은 양해를 구하고 모든 점원들이 단체 손님들을 VIP처럼 대하면서 질문도 먼저 대답해주고 설명도 쇼호스트처럼 재밌게 하면서 구매를 유도했다. (당연히 나도 듣고 싶어 홀로 갔지만 그런 것 없었다 ㅎㅎ) 그런데 아무리 이러한 노력들이 가격에 반영된다하여도 가격이 너무 차이가 난다.
파는 입장(상점)에서 생각해 봤을 때, 소개비를 어디선가 메꿔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은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 많은 돈을 내야만 유지가 되니까.
답은 혼자 가서 다른 사람들이 낸 가격과 비교하여 제 값을 받고 오는 것인데 내가 갔을 때의 단체 손님들이 우리 엄마 또래의 아줌마 아저씨들인 것을 보면 사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모르면 눈탱이 맞는 세상이 아니라 몰라도 보호받는 세상이 되야 할텐데 이런 것들을 볼 때 마다 정말 씁쓸하다.
내 머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은 부모님과 함께 (부모님 친구들까지 포함하면 더 좋겠다) 여행을 가서 가이드 역할을 해드리는 것이다. 여러 가족이 모여서 지역별로 나눠 20-30대 자식들이 돌아가며 가이드를 해주는 깃발관광. 가격도 더 쌀거고 괜찮을텐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요즘 공유경제도 유행인데 한 번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엄마와 단 둘이 일본 여행을 갔었는데 신경 쓸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그래도 모자간에 대화가 별로 없는 우리집인데 여행동안에는 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