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오대산으로 여행을 올 생각은 없었다. 다만 서울에서 큰 부담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오대산을 찾게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월정사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팔각구층석탑이 남아있다는 점과 서울은 미세먼지라 불리는 스모그 때문에 호흡도 힘들지만 소금강 근처에 있는 오대산은 트래킹하기 좋은 전나무 숲이 있다는 점이 여행 장소로 정해진 이유다.
월정사
신라 후기에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수행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뒤, 지금의 강원도 평창인 이 곳의 산들이 오대산과 비슷하다고 하여 지명을 오대산이라하고 월정사를 지었다. 처음부터 규모가 크지는 않았겠지만 적멸보궁에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 뒤에 지은 절이 월정사이다. 한국 불교사와 역사에서 정말 큰 획을 절이지만 한국전쟁때 북한군이 거점으로 사용할 것을 두려워한 한국군이 이 일대 사찰을 전부 다 태워 천년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남아있는게 한 개도 없다. 2차대전 때 미국과 유럽에선 모뉴먼트 맨들이 활약할 때, 우리는 전부 태워버렸다는 소리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금강교를 지나면 목적지인 월정사와 전나무 숲길이 보인다.
차를 타고 월정사를 향해 달리다 보면 길 중간에 매표소가 있다. 국립공원의 관리비는 정부에서 없앴지만 사찰에서 따로 관리비 명목으로 입장료와 주차비를 받는다. 주차비가 4천원이고 대인은 1인당 3천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인데 과연 어떤 관리를 하는지는 들어가서 봐야 알 것 같다.
물 속이 훤히 보인다. 아직 한국에 이런 곳이 있어 참 다행이다.
월정사의 입구인 천정문이다. 양쪽에는 사대천왕이 맞아주시는데 뭐 이 분들도 연세가 그리 많지 않아 사진도 없다.
월정사에서 볼 것은 국보 48호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보물 139호인 석조보살좌상이다. 석조보살좌상은 복제품이 위치해 있으며 진품은 월정사 내에 있는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다. 나머지 역사적인 건물들은 미리 언급했듯이 한국군이 전부 불을 질러 태워먹었다.
복제품이라해도 탑을 바라보고 공양드리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탑의 숫자를 세다 보면 9층인지 10층인지 헷갈리는데 2단의 기단이 밑에 깔려 있어서 그렇다.
탑만 봐서는 정말 이것이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온 탑인지 놀라울 정도로 보존이 잘되었다. 이 중 네 개의 층은 무너져서 새로 넣었는데 이 때 내부에서 보관하던 보물이 발견되었다고한다. 그 보물들도 성보박물관에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보이지 않고 이상한 민화만 유리 속에 보관되어져 있었다.
말이 나온김에 성보박물관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그 안에서 사진은 찍을 수 없고 유리 안에는 민화가 전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하게 보관해야할 좌상은 덩그러니 밖에 내놓아져 있었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만질 수 있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입장료는 왜 받고 도대체 무엇을 보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입장료 받는 곳에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빠져나갈까 도처에 사람이 있는데 박물관 안에는 한 명도 지키고 있지도 않다. 내 상식에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나무 숲길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나무 숲길을 걸었다.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인공 예술품이 있어서 의아했지만 좋아하는 사람 절반 싫어하는 사람 절반인 것 같다.
상원사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이다. 한문 그대로 풀면 월정사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절이라는 것인데 그럼 월정사의 범위가 약 10키로가 된다는 소리인건가? 뭔지 잘 모르겠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8.8km이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는 편이 좋다. 하지만 주위 등산을 목적으로 오는 분들은 직접 걸어가시기도 하는 것 같다.
월정사에서 8.8km 떨어진 곳에 상원사가 있다.
월정사에 도착하면 바로 보이는 이 작은 돌기둥이 있다. 세조가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걸던 관대걸이가 남아있다.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가는 조선초였기에 아직 불교의 힘이 남아있어서인지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 중 상원사와 관대걸이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요약을 하자면 악행을 저지렀던 세조가 참회를 하는 동안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만났다. 그 중 첫번째 대면 때 동자승으로 변한 문수보살을 만나게 된다.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옷을 벗어 걸은 자리가 관대거리이며 동자승의 모습을 그린 목각상은 상원사 법당에 모셔져 있다.
당연히, 저기에 윗옷 걸어놓고 왕처럼 포즈잡고 사진 찍었지만.. 내시처럼 나와서 사진은 못올리겠다.
또 하나 상원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 월정사는 한국군이 홀라당 태워버렸지만 상원사는 주지스님이 자신은 절을 지킬 의무가 있으므로 같이 태울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강하게 말하다보니 어찌하지 못하고 문만 태웠다고 한다. 절 전체가 광복 이후에 재건된 것이라 보고 싶었던 신라, 고려 시대 때의 문화재는 볼 수 없지만 사찰을 지키기 위한 혼은 느낄 수 있다.
상원사에서 봐야할 것이라면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과 위에서 말한 문수동자를 그린 국보 221호인 목조문수동자좌상이다. 이 중 목조문수동자좌상는 미리 파악하지 못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항상 그랬듯이 여행을 다녀오고 정리하다가 알게되었다. 덤벙덤벙~
번뇌가 사라지는 길을 따라 가면 상원사가 나온다. 갑작스런 등산에 헥헥거리며 올라갔다.
상원사
올라오자마자 상원사 동종부터 보았다.
옆에 복제품이 있어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래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왼쪽에 있는 불상이 목조문수동자좌상이다. 목조인데 왜 금칠이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안에서 너무 열심히 기도 들이시는데 방해할까봐 들어가지 않았는데 좀 둘러볼걸 그랬다.
현대 미술로 만들어진 봉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