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오대산 주변 산채정식, 산수명산-나물을 먹지 않는 내가 나물집을 추천할 정도의 맛 20151115

강원도 오대산 주변 산채정식, 산수명산-나물을 먹지 않는 내가 나물집을 추천할 정도의 맛 20151115

Foodie/서울 밖에 있는 또 가고 싶은 식당

2015-11-22 03:13:15


어릴 때부터 워낙 편식이 심했다. 특히 나물은 절대 입에도 안댔고 거의 유일하게 먹는 채소가 김치일 정도였다. 사실 나물 뿐만 아니라 해삼, 멍게도 안먹고 미역, 다시마도 싫어하고 연근, 당근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초딩입맛을 유지하며 살아가다가 대학교를 가게되고 술을 마시면서 신기하게 편식하던 음식들 중 몇몇개는 먹기 시작했다. 오이, 당근(물론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고를 수 있으면 골라낸다.), 감자탕(돼지국물을 싫어한다.) 등등 꽤 많은 음식들을 술자리에서는 먹는다. 하지만 술이 아무리 있어도 먹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나물' 되시겠다.

그런데 바로 오늘, 그것도 뭔가 각오를 한 것이 아니라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서, '나물'에 밥을 먹게되는 위기가 찾아왔다.

산수명산

산수명산을 찾아가게 된 이유는 대단하지 않다. 강원도 산골이라 거의 대부분의 가게들이 8시면 문을 닫는데 전 날 술을 많이 먹은 탓에 호텔에서 잠깐 자서 아주 늦은 저녁을 먹어야 했다. '호텔에서 그냥 먹을까'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지역 음식을 먹어보자는 생각에 열심히 알아보니 10시까지 영업하는 산수명산에 오게되었다.

국도 중간에 있어서 걸어서 가거나 하기 애매한 곳에 가게가 있다. 차량은 필수처럼 보이기 때문에 운전자는 술을 못마시는 불행을 겪게 된다.

KBS와 SBS에는 나왔는데 MBC에는 아직 안나왔나 보다.

메뉴, 가격이 싸게 느껴지진 않는다. 요즘 어디를 가던지 서울하고 가격 차이가 나는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서울에서 먹을 수 없는 퀄리티를 가진 식당이 더 낫다.

식당에 도착하니 호텔에서 본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열심히 닭을 뜯어 먹고 있다. 시간도 늦은데다 단체 손님도 있어서 닭볶음탕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하신다. 이 때까지도 여기 음식이 어떤지 전혀 몰라서 그나마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황태구이 정식을 2인분 시켰다.

주문을 하고 5분정도 지났을까... 주방에 계시던 분들 총출동하여 아래처럼 떡하니 밥상이 차려졌다.

왼쪽에 차리는 나물과 오른쪽에 차리는 나물은 전혀 다른 나물이다.

나물이 밥상의 90%를 차지해 버리니 이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먹는 유일한 나물인 '명이나물'이 있어서 먼저 하나 먹어봤는데 어라? 짜지도 않고 괜찮다.

상 차려주시는 분들이 계속 '다 남겨도 나물은 다 먹고 가세요', '1000~1500미터 해발에서 나는 구하기 힘든 나물들입니다'라는 소리를 계속 하면서 상을 차려주신다. 게다가 김치도 시골답지 않게 간이 적당하게 되어서 한 번 먹어보자라는 생각에 젓가락을 들었다.

황태도 너무 달거나 맵지 않다. 대개 맛이 없거나 재료가 별로면 매우면서 단 맛으로 대충 넘어가려 하는데 그렇지 않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더덕이다. 내 경우 더덕의 쓴 향이 너무 싫어서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집 더덕은 씹는 식감도 나쁘지 않고 향도 아주 약하게 하셨다. 내가 더덕을 주로 먹는 사람이 아니라서 모두에게 맛있을 거라고 하긴 힘들지만 내게는 최고다.

이름도 모르는 나물인데 전부 먹을만 하다. 어떤 나물은 정말 너무 맛있어서 깨끗이 비운 것도 있다.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와! 이건 뭔데 이런 맛이나지?'라고 감탄을 하게 된다. 그 맛이 너무 신기해서 절대 두개를 동시에 먹거나 섣불리 밥을 넣지도 않는다. 나물 음식이 싫은 이유는 씹는 식감이 별로고 향이 너무 강해서인데 이 두가지를 어쩜 이렇게 내 맘에 딱 맞게 하셨는지 모르겠다. 공기밥을 하나 더 시키고 의욕적으로 나물을 최소한 두 번 씩은 집어 먹어서 기억해야겠다고 욕심을 부렸지만 이 놈의 위장은 좀만 먹으면 불러버린다.

나물 하나하나 이름을 대면서 어떤 맛인지 설명하고 싶지만 명이와 더덕말고는 아는게 없다보니 쓸 수도 없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집이다. 이 정도면 먹지 못한 닭볶음탕도 엄청 기대하게 된다. 오대산에 또 오면 저녁은 무조건 이 곳이다.


1월 2일에 동해 놀러가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아무데서나 점심먹자고 한 곳이 공교롭게도 오대산 근처였다. 차도 있겠다 10km정도만 가면 산수명산에 다시 갈 수 있어서 바로 차 돌려서 늦은 점심 먹으러 왔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메뉴판도 바뀌었다. 이 집 더덕구이를 좋아하는지라 양이 많지만 무리해서 더덕구이정식을 또 2인분 시켰다.

지난 번에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더덕구이를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한 초가 준비 되었다. 식은 더덕구이는 별로인데 잘 선택하신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나 일어나야만 상에 올라간 것이 다 나오도록 찍을 수 있었다.

이건 향이 상당히 강하다.

전에 찍었기 때문에 오늘은 먹는데 집중했음에도 다 먹지 못했다. 주인아저씨께서 나물은 다 먹어야 한다고 안타까워 하셨는데 너무 많다고 하니 '다음에 오면 큰 대접에 나물을 다 넣어서 비빔밥처럼 먹어봐요. 그럼 다 먹을 수 있어요.'라고 조언해주셨다. 아.. 미리 알려주셨으면 진짜 맛있는 비빔밥을 먹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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