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차-5월 12일 시베리아를 지난 어딘가-Trans-Siberian Railway 2nd day, Russia

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차-5월 12일 시베리아를 지난 어딘가-Trans-Siberian Railway 2nd day, Russia

Foreign trip/16-May:Irkutsk-Baykal lake-Trans Siberian Railway

2016-05-27 04:42:22


우리가 탄 19호차다. 꼬리칸이다. 설국열차의 그 꼬리칸 맞다.

아침에 눈 뜨니 군인 애들이 연어가 들어간 빵을 나눠준다. 정말 맛있다. 이것도 한국에다 팔고 싶다.

당연한 얘기지만 눈을 뜨니 열차 안이다. 기차 안은 소등된 상태이고 하루 종일 잠만 잤더니 잠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아무도 충전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핸드폰 충전이나 좀 하려고 화장실 앞에 나갔더니 청소하던 차장이 들어가서 자라는 신호를 보낸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소등을 하면 자야하나 보다. 물론, 바로 안자면 혼낸다는 소리가 아니고 다들 잠이 들어 객차가 조용해지면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서 누우라고 한다. 이 룰에는 군바리든 일반인이든 예외가 없다. 밧데리가 간당간당했지만 차장 아줌마가 워낙 무섭게 말을 해서 충전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우리 칸에 같이 타고 가는 이 부대의 막내처럼 보이는 군인이 배터리를 지키고 있다. 내 상황을 보더니 배터리를 달라고 한다. 내가 정확히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역까지 충전을 맡아서 해줄테니 두고 들어가서 자라고 한 것 같다. 웃지는 않지만 배려해 주는 행동이 몸에 배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여기 사람들은 우리에게 잘 대해준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나도 전혀 웃지 않는다. 러시아 사람 다 됐다.

배터리 지키는 일을 대신 해준 덕에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 수 있었다. 푹 자고 일어나니 늦은 아침이다. 사실 이른 아침인지 늦은 아침인지 점심인지 알 수가 없다. 시계가 대충 아침을 가리키고는 있지만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가 어느 타임존에 있는지 핸드폰이 안되는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남들 뭐하나 눈치를 잘 살펴야한다. 시차도 시차지만 정말 적응 안되는 것이 해 지는 시각과 해 뜨는 시각이다. 무슨 해가 이리도 빨리 떴다가 늦게 지는지 창 밖만 봐서는 전혀 모른다. 게다가 우리가 탄 기차의 경로가 점점 위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위도가 높아져 해는 더욱더 길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 덕에 가뜩이나 헷갈리는 시각이 이제는 내가 몇 시에 일어났는지, 몇 시간 뒤면 해가 떨어지는지, 지금이 아침인지 점심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왜 모든 기차역의 시간을 모스크바 시간대로 통일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여행객들만 있었다면 이것만으로도 큰 패닉이 벌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주위에는 27명의 완벽한 배꼽시계를 가진 배고픈 군인들이 있으며 이들이 식사시간보다 먼저 먹거나 늦게 먹거나 안먹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민할 필요없이 얘네 따라 밥 먹으면 배 터져 죽을지는 몰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


군인 애들이 주섬주섬 먹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컵라면이나 즉석밥을 끓이면 된다. 라면이 바뀐 이유는 두 개를 먹어서...

어느 역인지는 모르겠지만 길게 정차하는 곳이다. 음식이 떨어졌다면 이렇게 중간중간 음식을 사거나 기차 안에서 사면 된다. 기차역 음식은 대개 밖에서 사는 것보다 30% 비싸다. 최대한 이르쿠츠크에서 도시락을 많이 사두자.

이 동네 터줏대감 비만 강아지

아침밥 먹고 잠 좀 잘까 했는데 영어 할 줄 아는 여자가 군인들을 데리고 나타나서는 우리와 대화를 시도한다. 아니 어제는 뭐했다가 오늘에 와서야 나타난걸까. 재밌는 시간을 하루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친구의 이름은 옥산나, 짧게 '옥시'라고 한다. 22살인데 결혼을 했고, 결혼을 했는데 혼자 모스크바로 1년 동안 같이 게임한 온라인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한다. ~~집안일을 하는데 집안일을 잘 못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와이프라...~ 오른팔에는 일본풍의 예쁜 문신이 있는데 그 문신에 걸맞게 독특한 느낌을 가진 사람이다. 컴퓨터 게임을 상당히 좋아해서 게임 얘기로 한 30분동안 입을 풀더니 곧 주위에 있는 군인들과의 통역사 역할을 맡아서 해줬다. 대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들이 더 모이더니 본격적으로 신나게 질문하고 대답한다.

"What do you do?"

"Why do you come here?"

등등의 뻔한 이야기부터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아이폰이 한국에선 얼마 하는지 등 개인적인 호기심까지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제 이 대화를 서로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옥시 진짜 땡큐, 니 문신 80달러치고 진짜 괜찮다.

왠 거지 둘이 계속 라면만 먹는게 불쌍했는지 배터리를 지켜주던 막내가 산딸기잼을 줬다. 할머니가 싸준 산딸기잼이라는데 이렇게 덥석 받아도 되나 싶다

애들이 산딸지잼을 차에도 타먹고 벌컥벌컥 들이 마시기도 한다. 신기해서 한 번 따라서 차에 넣어 먹어봤더니 정말 맛있다

역시나 할머니가 싸준 초콜릿을 우리에게 건네준 샤샤. 안나눠주려고 몰래 숨겨왔는데 우리 주려고 오픈하는거란다

신나게 수다를 떨고 점심을 한참 지나 창 밖을 쳐다보니 아무도 모르게 시베리아의 눈 밭이 사라지고 평원이 펼쳐져 있다. 말그대로 지평선이 보일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 내 눈 앞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는 늪지대가 펼쳐졌다. 기차 하나를 타고 가면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지역을 지나치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기차라니, 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위시리스트 중 하나에 올리는지 이제 알겠다. 기차를 타면서 점점 적응을 하는지 지겨울 틈이 전혀 없어지고 있다.

날씨가 확연히 달라졌다

또 얼마 달리니 늪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내 생각에 운수가 텄다. 오전에 옥시에 이어 이번에는 번역기를 핸드폰에 설치한 애들이 와서는 말을 건다. 이름은 칭기즈와 솔본. 둘은 몽고쪽으로 보이는 애들로 이름부터 칭기즈 칸의 칭기즈다 울란우데에서 온 굉장히 호기심이 강한 친구들이다. 나이에 걸맞게 띠 동갑도 넘는 22살 전자기기에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으며 러시아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도 관심이 많은 애들이다.

전자기기 이외에도 서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양쪽 모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러시아와 한국군의 생활 차이였다. 러시아의 경우 징병제로 1년 6개월동안 군생활을 해야하고 그 동안 이동이나 부대에서 술도 못 마신다고 한다. 이런 줄도 모르고 두 번 데낄라를 권했는데 절대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군인 애들이었으면 눈치보고 원샷해버리고 입 싹 닦았을텐데 정말이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겉으로 봐서는 행동도 자유롭고 위 아래도 별로 없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규율이 생각보다 강한 군대로 보인다.

러시아 음식, 한국 음식, 여자친구, 애는 있는지 없는지 서로 묻고 대답하다보니 어제 하루동안 말 못했던 울분이 풀린다. 거기에 가져온 사진들을 보여주고 마지막엔 게임 얘기로 마무리했더니 어느새 저녁이다. 어느 블로그였나 책이었나 기억 안나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 그 칸에 누가 있던지 정이 든다고 했는데 여기 있는 군인 27명에다 앞에 할머니까지 어느새 정이 들어버렸다. 어제와 다르게 이제는 서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누면서 각자 다른 이유로 가지만 공통된 목적지인 모스크바로 달리고 있다.

술의 나라 답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러시아 사람들과 술을 나눠 먹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이유는 싸움.

가장 큰 마트가 있는 역이다. 튜멘(제대로된 발음은 '쮸멘')이란 도시이니 지나가다 보이면 반드시 내려 먹을 것을 사야한다. 카페도 있어서 저녁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Тюме́нь이라 쓰여 있다.


경비 (1인당) 없음

여행 총 경비 525,936원 + 12,081R +$53.16


#시베리아 횡단열차
다음 이전

이 포스트의 위치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