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여기도 적응을 했는지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해가 너무 이른 시각에 중천에 있다는 건 생각해 볼 문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진짜 다들 적응했는지 기차 안이 수면실이다. 어제 밤에는 앞자리에 출발부터 같이 탄 할머니와 부둥켜 안으며 작별인사를하고 오늘 새벽부터 또 다른 할머니가 타셨다. 우리 앞자리는 바부슈카(러시아어로 할머니) 전용석인가 보다. 여지껏 같이 탄 할머니와는 다르게 앞에 분은 젊을 때 초등학교 선생이셨는지 지나가는 나무며 지역이며 우리에게 친절히 하나하나 설명해 주신다.
물론, 러시아어로.
비가 오기 시작한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큰 사명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우리에게 설명해 주신 바부슈카가 생각보다 빨리 내리신 뒤에는 젊은 부부가 탔다. 사실 젊다는 것은 그냥 이제껏 봐온 할머니들보다 젊다는 뜻이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구분이 안된다. 여하튼 남자는 팔에 잉어 문신을 하였으며 생김새는 프로레슬러 '더 락'처럼 생겼고 여자는 그에 비해 말도 안되게 귀염귀염한 얼굴로 우리랑 군인들을 웃으면서 신기하게 쳐다 보고 있다. 러시아에 와서 이렇게 언발란스한 커플을 자주 보았는데 여자는 편차가 있지만 남자들이 전부 레슬러다 이런 밸런스가 완전 깨진 커플의 특징이라면 모든 남자들이 여자한테 상냥하고 말도 잘 듣고 심지어 하루종일 웃어준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남자들은 여자들의 사진기사 찍사 라는 불변의 현실에 잠시 숙연해진다. 다만, 앞의 '더 락'처럼 대부분의 남자들은 같은 남자인 우리에게 미소따위 주지 않으며 모든 말은 여자를 통해서 한다. 마치 왕과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딱딱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모스크바에 산다는 앞의 '더 락' 부부에게 모스크바 음식점 중에 괜찮은 곳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 한 번의 말실수가 엄청난 일을 불러올지는 전혀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한 군데 알려주더니 또 찾고 또 찾아서 무려 네 시간동안이나 레스토랑을 찾고 앉아 있다. 여자는 즐기는 것 같아 괜찮았는데 우리의 '더 락'께선 손바닥 절반만한 핸드폰을 쭈구리 자세로 네 시간동안 찾는 모습은 왠지 곧 그 핸드폰으로 내 머리를 쪼갤 것 같아 화장실도 못 가게 만드는 포스였다. 나중에는 눈이 침침한지 안경까지 끼며 본격적으로 찾는다. 찾는건 쟤네인데 왜 우리가 힘든지 모르겠다.
빵이 꼭 필요한 감자스매쉬. 그냥 먹기엔 너무 짜다.
이제 이 기차에 머무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약간의 아쉬움이 생긴다.
이제 슬슬 큰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법의 음식, 해바라기 씨. 하나하나 까먹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한히 계속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조합이다. 한국 라면이 왜 잘 팔리는지 알 수는 있다
내일 새벽 도착이기 때문에 너도나도 짐을 다시 꾸리기 시작한다. 우리도 가지고 온 약이며 음식이며 군인애들한테 다 나눠주니 고맙다면서 군보급품을 나눠준다. 덕분에 러시아 군인용 야전 도시락 셋트가 세 개나 생겨서 올 때보다 짐이 더 무거워졌다. 여행은 가득 채우고 나가서 전부 다 비워버리고 다시 그 곳으로 채운다고 하더니 정말 물리적으로 다 채워버렸다. 군식량으로
다 비워야 다시 전부 채울 수 있는 것은 여행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통용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경비 (1인당)
- 저녁 270R
총 경비 270R
여행 총 경비 525,936원 + 12,351R + $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