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 브라보의 매니저 앤드류의 상세한 설명 덕에 버스타고 이르쿠츠크 시외버스 정류소까지 잘 도착했다. 처음 계획은 걸어서 이 길을 가려고 했는데 무모한 계획이었던 것 같다.
앤드류 덕분에 쉽게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생긴건 저래도 버스다.
운좋게 본 이르쿠츠크의 한 교회에서의 타종
크게 문제되지 않고 다니던 우리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으니 이르쿠츠크에는 환전소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 은행이 당연히 문을 닫았고 어디를 가던지 신용카드를 받는다던 한국과 외국 여행 블로그의 글들과는 다르게 버스 정류장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는다. 카드리더기가 고장이 난건지 아예 받지를 않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당황했고 머리 속은 꼬여버렸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쓰려고 했던 신용카드를 꺼내들었다. ATM기에서 형이 비자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출금, 버스티켓을 구했다. 신용카드마저 없었으면 어찌되었을까? 표를 받아들었지만 기분이 영 개운하지가 않다.
리스트비얀카로 가는 버스가 다니는 이르쿠츠크 시외 버스 정류장
봐도 뭔지 모르는 버스 일정표. 손짓발짓 써가며 표 파는 아줌마와 이야기해야만 한다. 참고로 리스트비얀카행 버스는 8:30, 9:30, 13:30, 14:15, 17:30, 18:00이다. 이제는 러시아어를 조금 읽을 수 있어서 리스트비얀카를 찾아 확인할 수 있다.
잠시 쉬면서 식사를 할 때 정말 유용하게 쓰였던 구글 번역기
리스트비얀카행 버스. 다시말하지만 생긴건 저래도 버스다.
약 한 시간을 약간 지루한 길을 달린 뒤 버스에 내리니 짐 싣는 비용 20루블을 달라고 한다. 아저씨 표정이 워낙 무섭고 적은 액수라서 주긴 했는데 이게 정상적인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400원 가지고 사기 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늘부터 이 거대한 호수에 위치한 리스트비얀카에서 머물 호텔은 "호텔 바이칼"이다. 아고다에서 찾아볼 때 가격이 매우 저렴한데다 구글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호텔이다. 새벽에 뒤도 안돌아보고 보자마자 바로 예약했던 호텔이다. 걸어서 10분이니 당연히 걸어야지. 이 10분이 그 10분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
바이칼 호수를 정말 떠들석하게 지나가며 10분을 걸었다. 약간 이상하게도 호텔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잘못잡은 것 같아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러시아어로 '무지에'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돌라고 한다. 덧붙여 뭔가 길~~다는 형용사를 쓰고 전쟁에 나가는 옆집 총각을 보는 듯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건 그냥 러시아 사람들의 특징일거라 생각하고 계속 걸어나갔다.
걸은지 30분째, 우리는 '무지에'가 '다리'를 뜻하는 것이라 확신을 하고 작은 다리 앞에서 이제 다 왔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았지만 호텔 같아 보이는 것은 없다. 점점 망했다는 느낌이 왔지만 이 역시 단순한 헤프닝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리모델링 공사하는 분들께 (물론 아무표정없이 일하는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아이폰을 꺼내들며 친히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시켜줬다. 지도를 보니 이번 골목이 아니라 좀 더 가서 돌아야 한다. 이 때 거리라도 봤으면 좋았을 것을
걸은지 45분째, 점점 가방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앞 뒤로 합해서 20kg이니깐 그럴만도 하다. 도대체 난 구글맵에서 어떤 10분을 본걸까?
걸은지 1시간째, 이제는 처음 길을 알려준 아주머니께서 왜 그렇게 놀라면서 '길다'로 예상되는 형용사를 2초간 발사하셨는지 알 것 같다. 아주머니와 같이 계셨던 할머니의 '도리도리' 손짓이 안된다는 뜻인지 이제 알았다.
걸은지 1시간 10분, 드디어 '무지에'를 찾았다. 젠장, 무지에는 다리가 아니라 박물관이었다. 그래도 박물관을 찾았으니 조금만 더 가면 호텔에 도착한다. 조금만 버티자...
걸은지 1시간 15분, 아... 드디어 호텔이 눈 앞에 보인다. 보이는데 언덕 위에 있다. 둘이 걸으면서 말이 없어진지는 한 30분 되어가는 것 같다. 땀은 쩔어서 팬티까지 다 젖었고 머리속에서는 도대체 새벽에 결제하면서 어떤 경로의 10분을 본 것인지 필사적으로 기억하려 했다.
걸은지 1시간 30분, 드디어 호텔 바이칼에 도착. 리셉션에서는 땀에 쩔은 히말라야 포터 두 명을 위해 급하게 방을 내어주고는 우리의 온갖 질문에 전부 답해주었다. 정말 러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웃으며 친절하게 맞아주는 첫 사람들이다. 왜 호텔에 왔는데 이렇게 감격스럽고 벅차오르며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리스트비얀카 오는 포스팅이 이렇게 길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냥 사진 몇 개 올리고 끝낼 줄 알았는데 심지어 이르쿠츠크도 안보고 왔는데 또 시트콤 찍고있다. 조금 쉬고 밥 먹으러 가는데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불렀더니 150루블, 한국돈 3000원이다. 둘이 나누면 1500원인 돈을 아껴보고자 이 고생을 했다.
이번 셀프고행 하면서 공식 하나가 만들어졌는데
- 비행기 1분 == 기차 20분
- 기차 1분 == 자동차 20분
- 자동차 1분 == 도보 20분
호텔 오자마자 확인하니 내가 본 10분은 자가용 10분이었고 도보는 1시간으로나온다. 새벽에 예약하는 동안 뭔가 씌였나보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그 많은 호스텔을 두고 굳이 걸어서 1시간 반 거리에 예약하면서 싸게 했다고 좋아했었다니.
새벽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헤어진 여자 혹은 남자친구에게 진상피우며 전화하는 것 말고도 많다.
택시가 생긴건 이래도 리스트비얀카 안에서는 돈을 올려받거나 하지 않으니 안심하고 택시타자. 아니면 버스를 타자. 버스는 20루블이다.
경비 (1인 기준, 택시, 식사는 2배를 하면 원가)
-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미니버스 50RUB
- 리스트비얀카행 버스 111RUB
- 점심 218RUB
- 택시 85RUB
- 저녁 (돼지 샤슬릭, 치킨 샤슬릭, 블로프, 맥주) 230RUB
- 저저녁 (오물, 배, 양 샤슬릭, 맥주) 635RUB
- 돌아오는 택시 75RUB
- 맥주, 물 121RUB
- 숙소 3일 $26.16
총 1525RUB + $26.16
여행 총 경비 525,936원 + 2505RUB + $2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