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새벽 4시반, 러시아에 와서 기차만 타면 항상 새벽에 도착한다. 물론, 이 기차가 싸서 타는 것도 있지만 아침에 굉장히 피곤한 상태에서 숙소를 찾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이 운행을 시작하자마자 첫 차를 타고서는 출발하기 바로 전에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이메일로 일찍 도착한다고 말하고 Early check-in이 되냐고 물어봤더니 300루블이라고 답변이 돌아온다.
'아니 방 값이 300루블인데 체크 인 좀 빨리 한다고 300루블을 또 달라고?'
짜증이 금새 머리까지 나서 그냥 길에서 버틸까 생각했지만 기차 안에서 코 곤 고등학생때문에 눈도 뜨기 힘든 와중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린다. 평소에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친 내게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곰 한 마리처럼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300루블 더 내더라도 체크인 빨리 하기로 결정했다.
지도를 보고 숙소 근처까지는 갔지만 간판도 없고 심지어 문도 열리지 않는다. 비까지 내려서 가뜩이나 힘든데 답답하게까지 만든다. 결국 돈 때문에 걱정이 산더미이면서도 근처에 문을 연 레스토랑 가서 430루블이나 하는 햄버거에 맥주 셋트를 먹으면서 마스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 보내고 조금 지나니깐 어디냐는 답메일이 온다. 핸드폰이 와이파이가 없으면 먹통이나 마찮가지여서 메일로만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다가 드디어 사거리 앞에서 만났다. 이제 내 삶에서 와이파이나 데이터없이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볼샤야 모르스카야의 마스터 이름은 '나탈리아'이다. 숙소에 장기간(그래봐야 1주일이다) 지내면서 알게된 사실은 나탈리아는 10시가 넘어서야 호스텔 청소하러 오는데 이 날은 나때문에 오전 6시에 출근한 날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미안했고 호스텔이 더욱 좋아졌다.
도착하자마자 불확실한 것이 싫어서 바로 돈계산부터 헀는데 이상하게 1200루블만 받는다. 분명 얼리 체크인이면 300루블 더 받는다고 했는데 그와 관련된 돈은 한 푼도 안받는다. 다시 이야기를 해보니 나탈리아는 영어를 거의 못해서 내가 보낸 메일을 하루 더 지낼 것이라는 이야기로 알아듣고 300루블을 달라고 한 것이다. 즉, 이 호스텔은 얼리 체크인이 무료다.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평소에도 굳게 닫혀있다. 반드시 이 호스텔을 가기 전에 나탈리아와 언제 어디서 만날 것인지 혹은 문을 어떻게 열면되는지에 대해 확인해야한다
굳게 닫혀있던 철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갔다. 퀘퀘한 냄새와 어두운 실내. 전형적인 싼 호스텔의 냄새가 난다. 방에 들어갔더니 더 놀랍다. 좁은 방에 이층 침대를 여섯 개 두고 통로에 짐을 두니 딱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300루블, 달러로는 4달러, 다시금 자본주의에서 돈의 힘을 느끼며 일단 내 자리로 올라가 뻗어 잤다.
복도만 걸으면 정말 교도소의 느낌도 잠시 느낄 수 있다
복도를 오르다보면 5살 여자아이의 꿈이 가득한 방일 것 같은 문이 나온다. 여기가 볼샤야 모르스카야 호스텔이다
3일 정도 지내면서 이 방의 매력이랄까 사용법이랄까 그런 것들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충전은 주방 앞에 있는 식탁 중 가장 창가 쪽에 있는 자리 거의 내 전용석이 되었다에서 하면 된다. 가장 싼 6인실을 쓰는 사람들은 여행객은 아니고 일 하러 온 장기투숙객들이라 아침이 되면 다들 나가고 9시 정도에 돌아온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잔다 따라서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내는 여행객인 나의 경우, 그들과 거의 마주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서로 지나치면서 눈으로라도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 물건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이것이 두고 다니는 것을 추천하거나 안전하다고 확신시키는 것은 아니다
티비 바로 아래가 내 전용석이었다. 외국인보다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라 앉아 있다보면 러시아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방에서는 누가 같이 자느냐에 따라 땀냄새가 심하게 날 수 있고 샤워실의 물은 5분에 한 번꼴로 따뜻한 물이 안나올 정도로 보일러의 힘이 약하다. 변기 물은 한 번 내리면 다시 차는데 5분정도 걸리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것을 내려 보낸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이렇게보면 완전히 최악의 방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6인실, 1층은 장기 투숙객들이 이미 점령했다
우선, 위치가 정말 말그대로 에르미타쥬에 기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지도를 보면 더 확실해지겠지만 이 호스텔에 묵게되면 지하철은 거의 탈 필요가 없다. 유명 관광지의 어디를 가든 걸어서 갈 수 있는 최적의 공간에 호스텔이 위치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광지들이 몰려 있는 것도 한 몫한다
둘째로 청결.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약간의 퀘퀘한 냄새가 나는 호스텔이지만 거의 매일같이 나탈리아가 와서 청소기로 돌리고 나간 사람 이불 빨고 수건 빨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딱 보기에 베드 벅스 빈대가 있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일주일을 살면서 물리지 않았다. 이건 3일 이상 있어야 아는 것인데 정말 의외로 깨끗하다. 특히 2인실의 경우 나탈리아가 엄청 꼼꼼하게 청소한다. 또한, 호스텔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화장실이나 샤워실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지 않는다. 길어봐야 한 두 명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고 수용 능력이 적은 호스텔이 사람들로 바글바글대는 것은 아마 보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다. 사실 내가 지낸 시기에만 허용되는 이야기라서 이것은 말 그대로 변수다. 다른 호스텔들과 다르게 극도로 좁고 어두운 분위기의 대세와 정 반대로 가는 호스텔이라서 사람들이 늦게까지 시끄럽게 떠들거나 술에 취해 잠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후 9시면 잠을 잘 준비를 하고 호스텔 안에서 맥주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자는데 방해되는 사람이라고는 코고는 사람이거나 밤 늦게 나타나는 나같은 인간들이다. 최근 유행하는 젊은 감각의 호스텔들처럼 술을 마시고 음악을 틀어서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 특히나 6인실에 투숙하는 여기서 일하는 장기 투숙객들 난 이 사람들 직업이 갱단이나 해결사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저런 눈빛을 가질리 없다. 눈빛을 보면 왠만해선 쫀다을 만나면 시끄러워도 조용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조용한 분위기는 처음에 불편했던 이 방을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서 7박이나 이 집에서 머물게 만들었다.
Booking.com이나 아고다에서 제일 저렴한 곳을 찾으면 이 호스텔이 가장 먼저 검색된다. 평가나 사진을 봐서는 지낼까 말까 고민되는게 사실이지만 혼자 또는 두세명의 친구들이 싼 가격에 지내고 싶다면 정말 강력히 추천한다. 여자의 경우 6인실은 안가는 것을 추천하고 장기 투숙객은 전부 남자다 여기 묵더라도 불편사항이 많다는 것을 미리 염두해야 한다. 일주일간 묵으면서 커플로 오는 경우를 두 번 봤는데 내가 보기엔 여자 분들이 저렴한 여행에 특화된 사람들이다. 내 여자친구 혹은 집사람이 저렴한 여행에 특화되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이 호스텔을 시험무대로 적극 추천한다. 헤어지는 것은 내게 따지지 않길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혼자 지내기에 가격 싸고, 와이파이 잘 되고, 샤워할 수 있으니 가난한 백패커들에게 부족함없이 좋은 곳이다.
일주일동안 잘 대해준 6인실 침대 1층 사람들과 나탈리아에게 감사드린다.
경비
- 아침 햄버거 맥주 셋트 430RUB
- 에르미타쥬 입장 500RUB 오디오 500RUB
- 책 450RUB
총 경비 1880RUB
여행 총 경비 525,936원 + 38,555RUB + $15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