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늦게 들어온 덕에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이제 여기에서 꼭 봐야겠다고 했던 것들은 거의 다 봤기 때문에 특별히 갈 곳도 남아있지 않다. 덕분에 오늘 낮시간에는 산책이나 하다가 공원에서 여행을 정리하고 다음에 어디로 갈지 조용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 문장 그대로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무엇을 할지 여행에 의미를 더 어떻게 부여할지와 같은 큰 그림에서의 길이다. 지금 내 경우는 다음 루트를 어디로 해야할지 놓친 상태다. 출발부터 무계획으로 시작하여 돈도 부족한데다 중간에 여자친구 만나면서 다음 행선지를 여자친구 비행에 맞춰야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보니 선뜻 어디로 가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고는 바닥을 향해 달려가고 한국인은 커녕 친구로 만날만한 외국인도 별로 없어 외로움 아니 정확히는 심심한 시간이 갈 수록 생기기 시작한다. 인생과 비슷하다고 하는게 야구, 마라톤 그리고 여행인데 내 인생에서 이렇게 길을 놓치고 타인에 의해 어디 갈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난 어떻게 할까?
여기저기 생각 정리하기 좋은 공원이 많다.
낮동안 벤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도 예측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3일을 더 있기로 하고 27일까지 방을 연장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을 못내려 늦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이별에서 무엇을 할지는 조금 더 생각해서 채워넣었다. 신기한 것은 조금만 생각했는데 벌써 3일에 할 것들이 꽉꽉 들어찼다. 여행객에겐 정말 꿈같은 도시로 느껴진다.
계획은 우선, 네바강 보트 투어를 오늘 저녁에 하고 시간이 된다면 모스크바에서 볼쇼이를 못봤기 때문에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를 보는 것, 그리고 여름 궁전이라 불리는 뻬쩨르고프 (참고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사람들은 뻬쩨르라고 줄여 부른다)에 가는 것을 추가했다. 셋 다 금액이 만만치 않은 일정이라 과연 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희미하게나마 할 것을 정해두면 마음은 좀 편해진다.
원래 가지고 있던 계획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여행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이 예쁜 도시에 갇힌 것처럼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비오는 벤치에 앉아서 그나마 아름다운 곳에 갇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경비
- 점심 266R
- 물 음료 152R
- 27일까지 방 값 600R
- 저녁 라면 도시락 두 개 80R
- 나이트 보트 900R 덤탱이 맞은가 같다
총 경비 1998RUB
여행 총 경비 525,936원 + 44,251RUB + $15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