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서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하였음에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온 이유는 단 하나,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모스크바에서는 볼쇼이 극장 근처도 못가고 여기 와서는 건물 밖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왔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 탄생일에 본 짤막한 발레와 성악가들의 공연을 보고 나니 안 볼 수가 없었다.
탈린으로 떠나기 전, 볼쇼이, 키에프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발레단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을 보고 싶어서 바로 투란도트를 예매했다. 그것도 새로지은 마린스키 2,3관이 아닌 꼭 들어가보고 싶었던 마린스키 1관에서 하는 공연이다. 그렇게 완벽히 흥분된 상태에서 탈린을 들리고 드디어 오늘 저녁에 본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투란도트는 오페라입니다. 뭐에 홀렸는지 발레로 보고 예매했지만 오페라도 엄청나게 유명한 마린스키입니다)
드디어 저기서 공연을 본다!!
새벽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니 힘이 쭉쭉 빠진다. 기차와 비행기는 그나마 나았는데 버스에서 자고 다음날 관광을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돈을 아끼겠다고 밤 버스를 타고 다음날 바로 관광을 한다는건 상당한 무리수가 있다는 것을 꼭 염두하길 바란다. 아니면 코피가 쌍으로 철철...
어쩔 수 없이 다시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하루를 계산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인사하고 바로 취침. 일어나니 네시다. 티무르와 마지막으로 보기로 했기 때문에 빨리 이동해야했는데 이놈의 택시들이 전부 다 바가지를 씌운다. 아우 이 나쁜놈들. 결국 30분이나 늦었지만 착한 티무르는 커피에 핫도그까지 사준다. 어우! 너무 고마워!!! ㅠㅠ
티무르와 헤어지고 그토록 바라던 마린스키 극장에 들어왔다. 비록 예술엔 완벽한 무식과 무관심을 자랑하는 나여도 이런 곳에 들어오면 흥분하게 된다. 다만, 남들은 정장에 잘 빼입고 오는 극장에 75L배낭과 작은 배낭을 앞 뒤로 매고 거의 거지 꼴로 들어간게 문제다. 유럽에선 거지꼴로 하면 식당에서도 쫓겨난다고 하는데 입장을 하고 나니 걱정이 된다.
입구에 들어가게 되면 공항 수준은 아니어도 입장하는 사람 전부의 짐과 몸을 검사한다. 다행히도 여행객임을 이해해 줬는지 짐들을 맡기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하고 허둥대는 나에게 오히려 천천히 하라며 도와준다. 러시아 사람들의 미소없는 여유와 친절에 이제 마음이 편해진다.
제일 싼 티켓. 그래도 이게 어디냐.
드디어, 180년된 마린스키 극장에 들어왔다!!!
007영화같은 첩보물보면 항상 암살당하는 자리, 링컨 대통령이 암살 당했을 것 같은 자리다.
공연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음에도 자리가 거의 다 찼다. 그리고 모두들 챔스리그 결승을 기다리는 것처럼 너무 좋아한다.
저 커튼은 공연 때마다 바꾸겠지? 대충봐선 저 커튼도 180년된 것 같다.
역시나 살해당하기 좋은 왕자리. 영화의 폐해로 인해 좌우 황금칠 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왠지 다 죽을 것 같다...
그냥 가만히 한바퀴 돌릴걸.. 보니깐 정신없네
이렇게 카메라 찍으며 놀다보니 공연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예매할 때 발레인 줄 알았지만 시작과 함께 '오페라구나...'라고 할 정도로 강렬하게 시작한다. 발레는 자막이 필요없지만 오페라는 자막이 필요한데... 그 자막이 러시아어다. 투란도트 3장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투란도트가 중국이야기란 것만 알지 스토리도 전혀 모른다. 나 과연 잘 볼 수 있을까?
이런 걱정 무색하게 음악이나 노래가 대단하다. 물론 중간에 대사는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얼핏 티비에서 들어봤던 음악들이 계속 나오면서 어느새 흠뻑 빠져서 감상하고 있었다. 거기에 정말 멀리서 봐도 화려하고 눈을 뗄 수 없는 무대와 의상들로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멍하니 감상하다보니 중간 쉬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쉬는 시간인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밖에 나오니 끝이 아니란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니 '아~ 쉬는 시간이구나'하고 알 수 있었다. 그장면은 바로 샴페인.
샴페인파는 바에 줄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서서는 한 잔씩 받고나면 끼리끼리 모여서 한 잔씩 마신다. 너무나도 신기한 광경이라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에선 물이나 음료수 한 잔 마시고 실제 마시는 사람도 적은데 뭔가 '극장에서 공연을 보면 당연히 이 때 술을 마셔야지!'같은 인식이 이 동네에는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정말 좋은 문화다.
그나마 빠진 줄.
아 진짜 왕자리가 저기구나~
나도 한 잔만 주세여...
이제 또 종이 울리고 후반부가 시작됐다. 그리고 정말 자주 듣고 들으면 한 번은 무조건 돌아보게되는 Nessun Dorma가 나왔다. 정말 모두가 감동하고 나도 입을 쩍 벌리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물론, 그 노래가 Nessun Dorma인 것은 끝나고 나서 구글링을 했지만) 이 멋진 음악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투란도트의 주인공은 아무리 생각해도 '류'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너무 노래를 잘한다. 말 그대로 극장을 소리로 꽉 채운다는 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줬을 정도로 너무나도 대단한 노래를 보여주었다.
가격이 좀 나가더라도 마린스키든 볼쇼이든 러시아에서 공연은 반드시, 꼭! 봐야한다. 정말 다른걸 포기하더라도 꼭 봤으면 한다.
마지막 엔딩 장면. 공연을 찍을 수는 없어서 커튼콜만 찍었다.
왕
티무르
핑,퐁,팡
오늘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류. 정말 큰 박수가 쏟아졌다.
칼라프
투란도트
당연한 얘기지만 구글링해서 쓰는 것이다. 볼 때는 뭐가 뭔지 전혀 모르고 인도 영화 보듯이 음악이랑 춤만 보며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깝거나 하지 않았다. 문외한이고 내용도 모르고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구경하였지만 건물이 주는 기대감과 같이 보는 사람들이 주는 흥분이 내게도 전달되서 너무 재밌는 경험을 하였다.
BRAVO!!!!!!!!!!
나갈 때 엄청나게 복잡하다. 공항에 제대로 도착할지 걱정되기 시작한게 이 광경을 보면서부터다.
정말 겨우겨우 어찌어찌 공항에 제 시간에 도착해서 이렇게 그리스로 출발하게됐다. 이것도 한가득 짐을 매고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배려해 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내일 모스크바에 하루 있어야 하지만 공항에만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이 러시아에서하는 여행은 마지막이다. 서울에서 들은 것과 너무나도 다르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받고 가서 고마운 러시아, 바이바이입니다!!
경비
- 과자 66R
- 아침 380R
- 숙소 300R
- 지하철 35R
- 공항버스 70R
- 햄버거 340R
- 케찹 22R
- 뱃지 250R
- 뱃지 물 360R
총 경비 1823RUB
여행 총 경비 525,936원 + 49,322RUB + $312.26 + €9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