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이지만 왼쪽에서 코고는 소리와 오른쪽에서 코고는 소리로 눈만 감았다. 나도 모르게 잠깐 잠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발 그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시에 불을 껐으나 4시반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로비에 앉아 게임이나 했다.
기존의 계획에 변경이 생겨 오늘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기로 해서 약간 분주함이 예상된다. 거리는 50km로 오늘 달리는 거리가 제일 적지만 시간 안에 도착해야 버스를 탈 수 있기에 컨디션이 좋아야만 한다. 그런데 두 시간 정도만 잤으니 큰일이다. 카페인이여 내게 힘을 다오.
토스트와 삶은 계란과 컵라면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10시에 출발했다. 원래는 8시 출발이었지만 다들 피로도가 심한 상태로 어제 술을 조금 많이 먹었더니 일어나지를 못했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가득한 서울에서 와서 그런지 몰라도 이 좋은 날씨가 피로를 알아서 풀어주는 것 같다.
마지막을 향해 출발!!
삼척의 시멘트 공장들과 바다의 기묘하게 어울리면서 정말 멋진 길이 생겼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좋기도 하고 업힐도 많아서 혼자 라이딩을 하는 시간이 길다. 여유가 느껴져야하는데 나를 오래 기다리는 친구들때문에 오히려 여유가 없다. 진작에 미리미리 근육도 좀 만들고 자전거도 좀 타고 그럴걸... 맨날 닥쳐야 후회하지.
어찌어찌 길도 잃어서 혼자 헤매고 동네 바보 강아지의 호위까지 받으며 내가 강원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촛대바위에 왔다.
너 거기서 뭐하냐..
겨울에 본 촛대바위보다 여름이 더 예쁘다. 관광객이 너무 많은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이제 정말 몇 개 남지 않았다.
점심으로는 내가 첫날부터 노래를 불렀던 가자미 물회를 먹으러 왔다. 동해시에 있는게 본점이고 여기는 분점이다.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본점보다 가자미의 양이 좀 적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좀 더 맵고 새콤함은 덜했다. 피로도와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오늘은 정말 본격적으로 업힐 후 경치짱 인 구간의 연속이다.
황영조가 마라톤을 잘했던 이유를 알겠다...
인증 포인트를 보면 정말 기가 막히게 설정했다. 정말 길 잡는데 특출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재공원도 그 중 하나다.
우어어어 업힐 ㅠㅠ
한재공원에서 그간 수고한 자전거 사진을 찍어줬다.
한재공원을 지나고 나면 평지가 나오다가 임원항까지 계속 업힐이 나온다. 내가 다녀온 바로는 오르막을 다 오르고 쉬지 말고 내리막을 다 내려오고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충분히 쉬고 올라가는게 훨씬 낫다. 계속 초코바와 당덩어리를 미친듯이 30분마다 먹어도 오르막 한 번이면 다시 다리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이 구간에서 '정말 자전거를 하나 장만할까?'라는 생각과 '내가 지금 왜 이걸 타고 있지 걸어가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핑퐁하듯 좌뇌와 우뇌에서 계속 생각났다.
길 만든 사람이 밀당의 천재인듯 하다. 다 올라오면 이렇게 멋진 풍경을 선물로 준다.
임원 터미널. 여기서부터 500m만 올라가면 끝이라고 하시는데 그 500m가 정말 죽을 맛이다. 심지어 언덕 중간에다가 설치했다.
도착했다!!!!!!!!!! 으아아아아!!!!!!
마지막 업힐 기념샷
마지막까지 다 찍고나니 인증이 완료되며 은메달이 보인다. 아무 의미없는 한 장의 이미지지만 그간 고생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다. 살은 다 타고 얼굴은 푸석푸석해졌지만 왜인지 기분이 너무 좋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나는 것은 휴게소에서 타코야키 먹을 것 뿐이다. 완전히 기절해서 무려 네 시간을 달려왔거늘 20분정도만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친구들이랑 같이 달리고 중간중간 맛있는 것 먹고 (이번에는 별로 못먹었지만) 밤에 맛있는 안주에 소주 한 잔 먹는 (이것도... 한 번 만) 서울에서도 가능한 일들뿐이지만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과 너무 멋진 경치들이 다 알아서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랜드 슬램 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