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정원을 휘젓고 다니다보니 해가 질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포스팅을 할 때도 적었듯이 일출이나 일몰을 여러 배경에서 찍어보고 싶었다. 바이칼 호수에서의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는데 아직은 노하우가 없어서 결과물은 실제로 본 것보다 멋있지 않다.
아테네에서도 하나 찍어보고 싶었는데 딱 알맞은 자리가 리카비토스 언덕이다. 평지로 이루어진 아테네에서 유독 툭 튀어나온 언덕이라 산도 아닌 언덕이란 이름이 붙었어도 아테네의 풍경을 보기에 너무 좋은 장소다.
다만 올라가는게 힘들뿐. 포스팅 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리카비토스 언덕에 들렸는데 욕심 부려서 걸어 올라갔다가 눈치보는 상황만 생겼다. 같이 동행하는 사람이 걷거나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하면' 걸어 올라가고 그렇지 않다면 무조건 케이블카를 타도록 하자. 케이블카도 꽤 높은 곳에서 출발하니 걷는 재미는 어느정도 충족해 준다.
오늘은 나 혼자 온데다 이미 온 몸을 땀으로 샤워했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갔다.
지평선이 무슨 의미인지 아테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상까지 가는 길의 코너마다 2-3평 정도의 공간이 있다. 사진찍는 포인트라서 사람이 붐빈다. 30분 정도 기다려서 야경을 찍을 자리를 맡았다.
어느 방향으로 찍을까 고민하다가 아크로폴리스가 함께 나오면 멋있을 것 같아서 이 방향으로 정했다. 바다 쪽이 맑았으면 더 멋진 사진이 나왔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점점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일몰이란게 순식간에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해가 떨어져도 남은 빛이 약 20분 정도 세상을 밝힌다. 두 시간 정도를 저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참 지루하다. 지루하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기 쉽다. 나 외에 두 팀 정도가 야경을 찍고 있었는데 다들 말없이 아테네 시내만 바라보고 있다. 쟤네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마침내, 아테네에 완전한 어둠이 깔렸다. 아크로폴리스엔 조명이 켜진다.
나무가 있는 곳과 아닌 곳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어둠이 내리면 리카비도스 언덕은 매우 위험한 길로 변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산길이기 때문에 발목이 꺾이거나 넘어지기 쉽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이블카로 내려간다. 편도 1명당 4유로다. 참고로 잔돈을 미리 가져가는 것을 추천한다. 레스토랑이 하나 있지만 잔돈을 안바꿔주고 잔돈을 바꾸기 위해 가장 싼 음료를 선택한게 콜라인데 그 콜라도 한 잔에 1.5유로나 한다.
리카비토스 언덕을 내려가서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커플이나 가족이라면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해야할텐데 택시들이 하나같이 사기를 친다. 유명한 관광지고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보니 아예 택시들끼리 가격도 담합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저번에 택시를 탔을 때 가까운 거리여도 15유로를 냈다. 두 번이나 그럴 큰 돈을 낼 수 없어 이번에는 걸어서 내려갔다.
아래에서 본 리카비토스 언덕.
그렇게 세 시간이나 죽치고 앉아서 찍어온 30초짜리 타임랩스. 대충 아무 음악이나 넣었는데 확 끝나버리는게 좀 이상하다.
타임랩스를 몇 번 해보니 RX-100에서 만원에 파는 타임랩스 앱은 그닥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 아이폰 타임랩스가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준다. 아주 오랜 시간(1시간 이상)을 타임랩스로 만든다면 RX-100이 나은데 그 외는 아이폰이 압도적이다.
내려와서 집에 걸어가보려고 하니 배가 너무 고팠다. 저녁 안먹고 넘기려 했지만 오늘 너무 걸어다녔더니 배에서 요동을 친다. 아테네 밤거리는 아무도 없어서 빨리 가버릴까 했지만 그리스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보이는 구디스가 있어서 간단하게 햄버거 셋트 하나 먹고 이동했다.
맛과 크기는 꽤 괜찮다. 패티의 식감이 맥도날드 패티같지 않고 콩으로 만든 고기처럼 부드럽다. 늦게 안게 약간 아쉬울 정도.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대학교. 벽이 온통 그래피티다. 우리나라 대학교는 밤에 이 정도로 무섭진 않은데 아테네엔 밤에 공부하는 애들도 없는지 조용하다. 그래도 건물엔 빛이 환하다.
길에 정말 한 명도 없다.
아테네 밤거리를 걸어보니 정말 이 짓은 두 번 다시 하면 안되겠단 생각이 든다. 운이 좋아 오늘 아무일도 안생겼지 털리기 딱 좋은 거리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저 멀리서는 "Hey!! Hello my friend!!!!"라고 계속 부른다. 친구 사귀고 싶으면 아테네 밤거리 돌아다니면 좋을 것 같다. 거기 친구 좀 서라고 소리치며 애타게 친구 찾는 사람들 많다.
다른 도시도 마찮가지지만 특히나 아테네에선 밤에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하지 말고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최대한 이용해서 집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에도 밤이 되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긴장해야 하지만 (평범하게 생긴 애들이 구걸의 기본 자세로 다가온다) 그래도 아무도 안다니는 길을 걷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밤에는 조심, 또 조심 하세요
경비
- 빨래세재 €1
- 점심 €3.3
- 구디스 햄버거 셋트 €5.7
총 경비 €10.0
여행 총 경비 525,936원 + 47,999RUB + $639.96 + €54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