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짱 108계단(이건 그 계단이 아니던가) 보다 더 높은 계단이 펼쳐지는 영실 코스는 말이 좋아 등산이지 계단과 나의 싸움이다. 윗새오름까지 나 있는 계단이 없었으면 오르지를 못했을거고 계단이 있으니 이 고생을 한다. 있어도 지랄 없어도 지랄이다.
최대한 밀고 끌고 올라가도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엄마는 치어리더가 어릴 때 꿈이었는지 조금만 넓은 계단이 나오면 앉아서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 응원하고 있다. 그나마 겨울에 와서 이 속도이지 만약 여름에 왔으면 옆에 온갖 꽃이랑 풀들하고 말하느라 올라가지도 못했을거다.
밑에서 볼 때도 까마득했는데 위에서 봐도 까마득하게 계단이 보인다
이제 계단코스는 끝이 나고 아이젠을 착용해야하는 코스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그냥 아이젠 없이 갈까?'란 생각을 했는데 그랬다간 머리통 제대로 깨져서 돌아올 뻔 했다. 서울의 산보다 돌이 훨씬 많고 눈도 녹지 않아 미끄러져서 돌에 머리 박기 참 좋은 환경이다. 몇몇 용기있는 아저씨들은 아이젠없이 다니지만 그냥 속편하게 하나 빌려서 다니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그래도 아이젠 없이 가겠다는 용자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 거리는 짧다. 오백걸음인지 천걸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눈꽃이 아름답게 핀 오솔길같은 길에서만 착용하면 된다.
눈꽃 던전 들어가는 느낌이다
눈꽃이란 단어는 머리 속에 글자로만 존재했는데 이젠 이미지도 함께 존재하게 되었다.
금새 끝난 아이젠 코스. 다시 아이젠을 벗고 걸어간다.
다시 정비된 길이 나타나면서 구름과 눈꽃이 서로 섞이는 장관이 연출된다. 윗세오름이 사람들 입에 올라가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산을 타고 올라왔는데 지평선이 펼쳐졌다고 착각하게 산 위에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다. 산과 구름이 만드는 지평선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광경이다. 최대한 짜내서 비슷한 것을 찾아보면 수평선에 물안개가 낀 것과 비슷하다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수평선은 고요함과 미지의 세계란 느낌이 드는 반면 윗세오름 지평선은 웅장하고 정말 신선 하나 쯤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윗세오름에 가면 보너스 트랙마냥 윗세족은오름이란 곳이 하나 더 있는데 많이들 지나치고 간다. 다리가 풀릴 시점이라 저 위까지 오르기도 귀찮으니 계단 입구에 다들 모여 쉰다. 역시나 쉬겠다는 엄마 두고 잠깐 다녀왔는데 구름이 많아 잘 보이지는 않았다. 다녀오고나니 엄마가 혼자 뭔가 먹는다. 분명 먹을 것은 내 배낭에 다 있는데 혼자 먹을거 챙겨서 올라왔나 보다.
"뭘 또 혼자 먹어. 같이 좀 먹지"
"응~ 여기 아줌마한테 배고프다고 하니깐 줬어"
아줌마들끼리 앉아 있는데 엄마가 혼잣말로 '아우 힘들어 아우 배고파'를 연신 반복했나 보다. 그거 듣고 옆에 아줌마가 초코바 하나 줬단다. 아이고 어머니~ ㅋㅋ 미치겄네. 우리 엄마도 미친듯이 웃긴데 옆에서 같은 것 먹는 아줌마도 너무 웃기다.
백록담. 저기는 언제 가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