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사려니숲길에서 바다쪽으로 이동하니 눈발이 점점 약해진다. 살면서 눈 내리는 것에 쫄아본 것은 처음이다. 운전을 하면서도 '제발 저를 보고 피해가세요'라고 속으로 기도하며 기어가듯 차를 몰았다. 누가 사는게 너무 재미없고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투정을 부리면 주저없이 한겨울 한라산을 추천하겠다. 여기서 운전하면 1초도 등에 땀이 마를 일이 없다.
바다로 이동을 했다고 제주도가 너그러이 여행을 하게 냅두지는 않는다.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세차게 바람을 보낸다. 한라산 중턱은 나무덕에 바람은 조금 약했지만 눈발이 세찼다면 바다쪽은 눈은 안내리지만 오승환 직구같은 바람이 여과없이 뺨다구를 제대로 때린다. 차에 있으면 전혀 느끼지 못하다가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나가면 누가 때리지도 않는데 얻어맞는 것처럼 몸을 움직인다. 제주도에서 바람이 괜히 유명한게 아니다.
신기하게도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파도가 높지는 않다. 비교 대상은 인도네시아 발리다.
이 사진만 봐서는 그냥 멋질뿐이지만 이 배경으로 찍은 셀카에 우리 가족 전부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차를 타고 한림항까지 온 이유는 밥. 한림칼국수에서 보말 한 번 먹어보겠다고 왔다가 이 고생 중이다. 칼국수 한 그릇 먹고나니 바람이 좀 잔잔해져서 한림항을 슬쩍보고 오기로 했다. 과연 슬쩍보고 오는 동안 계속 잠잠하게 기다려줄까?
절로 배가 휘청인다. 파도 높이만 생각보다 낮을뿐이지 요동치는 힘은 무서울 정도다. 왠만해서 빠지면 죽겠단 생각은 안하는데 이 바다에선 죽겠다.
이 바람에도 집 지키고 있어? 아유~ 착하네~ 근데 참 멍청해 보인다.
운치있게 항구와 항구 특유의 진한 바다냄새를 느껴야 했지만 언제 바람이 쎄져서 덮칠지 몰라 조깅하듯 한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항구 한 바퀴 다 돌았다 싶으니 눈치 빠른 바람이 또 세차게 불어온다. 차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 날이었는데 날 한 번 잘 잡았다. 오늘 여행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차 안이다. 이 바람에 걸었다간 걷는게 아니라 날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