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주가 지내기는 참 좋긴한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부는 것과 날씨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이 안되는 점은 불편하다. 특히 바람은 제주를 대표하는 세 개(돌, 여자, 바람) 중 하나인 이유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겨울에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면 '칼바람'이라고 하는데 제주는 칼이 아니라 둔기다. 바람이 뺨을 때리는 수준이 아니라 온 체중을 주먹에 실어 휘두르는 스트레이트에 얼굴을 제대로 가격당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바람이 세차고 맑다가 갑자기 눈이 휘몰아치는 날씨에 제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중 하나인 성산일출봉에 가기로 했다. 여태 제주도를 네 다섯번 온 것 같은데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것은 처음이다. 항상 성산일출봉 근처에 오면 일출봉이라는 이름처럼 일출을 보러 오려 했지만 그간 한 번도 일출 전에 일어나지를 못해 올라간 적이 없는 곳이다. 이번에도 해 뜨기 전에는 못일어났지만 꼭 해뜨는 것만 볼 필요있겠냐는 말에 처음으로 등반을 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일출봉에 도착하니 날이 맑아져서 등반하는 기분도 좋고 풍경도 눈에 잘 들어왔다. 역시 여행에서 중요한 포인트의 반은 동행이고 나머지 반은 날씨다. 물론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돈이란게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사랑한다는 성산일출봉
사드문제로 중국 관광객이 많이 안왔다고해도 일출봉엔 중국어가 쉽게 들린다
2천원이면 가격은 싸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봤을 때 정말 장관인 일출봉 올라가는 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듯이 길도 멀리서 보면 멋지고 가까이가면 '언제 다 올라가나' 생각하며 한숨이 나온다
파라노마 원본은 멋진데 줄이니 그 맛이 안난다
18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계속 계단이라 힘들다
절반쯤 내려갔을까 또 눈이 휘몰아친다. 먼 바다에서 눈구름이 몰려오더니 순식간에 일출봉을 덮친다. 이런 광경은 바이칼 호수에서 갑자기 날씨가 변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눈과 비가 내릴 때 도시에서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우산들고 오지 않았는데 귀찮게 갑자기 내리네' 정도로 짜증만 나지만 바다나 큰 호수에서 날씨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 전에 보여주는 하늘과 파도와 바람의 변화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맑은데 저 멀리 어두운 그림자 같은 구름이 이쪽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고 그 구름 아래의 바다는 소리를 지르며 물을 위로 들어올린다. 저런 모양이면 정말 용이 승천한다고 믿을만 하다. 물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자연이 무섭다. 날씨가 무섭다.'하는 이유를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