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재미있게 보는 것을 넘어서 정말 내 인생에서 흔하지 않은 본방사수까지하며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니 바로 '알쓸신잡'이다. 1주에 두세번 방송하면 참 좋을텐데 딱 한 번하고 그마저도 몇 번 여행다니더니 끝나버렸다. 너무 재밌게 보는 방송인데 재밌게 보는건 꼭 금방 끝난다.
여튼 이 방송의 매력이라면 50대 아저씨들의 무한수열같은 수다인데 그 중 음식평론가인 황교익 선생? 님? 호칭을 뭘로 할까했는데 공인이니 없어도 되겠지?이 나와서 매우 재밌는 음식 이야기들이 나온다. 특정한 음식점 칭찬을 하는 그런 좁은 범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수준의 광범위한 음식 이야기를 아주 다양하면서 이해하기 편하게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시청자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이게 보다보면 저긴 꼭 한 번 가봐야지란 생각이 들어서 문제다.
오늘 간 식당도 이렇게 티비 보다가 '엇, 저기 꼭 가봐야지'하고 적어놨다가 가게된 곳이다. 이미 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음식관련 티비 프로그램에 한 번 이상씩 소개된 집이다. 거기다 가게이름도 특이하게 '원조숯불닭불고기집'이다. 아니 사람 이름도 아니고 원조xxx는 그냥 음식에 대한 설명이지 않은가. 유명한 집의 포스를 넘어서 올테면 와보란 식의 포스가 이름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게다가 닭갈비가 아니라 닭불고기다. 이건 알쓸신잡에서 황교익이 설명을 하였는데 두 개의 명칭 중에 닭갈비가 이겨서 닭불고기는 사장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집은 닭불고기다. 뭔가 주인의 고집도 느껴지고 얼마나 맛있길래 다른 집들이랑 이렇게 다르게 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한다.
수요일 낮시간인데도 입석으로 와야했다. 날도 쓰러질 정도로 더운데 나같이 노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춘천역에서 버스를타고 명동으로 와서 네이버 지도를 따라 가면 '여기 맞나? 여기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는 곳에 있다. 얼마나 방송을 많이 탔는지 수요미식회가 환풍기에 가려 있을 정도다. 약간 늦은 점심이었는데도 15분은 기다렸다. 그마저도 손님이 워낙 많아 1층이 아니라 2층으로 안내받았다.
가게 이름은 닭불고기지만 파는 것은 닭갈비다. 어짜피 같은 음식이지만 가게이름은 시간을 피해 그대로 남고 메뉴는 변경된 것 같아 재밌었다.
폭염경보가 울린 날에 숯불 앞에서 밥먹기는 정말 힘들다.
이제 고기가 나오고 신나게 먹어볼 차례. 혹시나 맛이 없으면 다른 곳에서 막국수를 맛나게 먹으려고 일단 1인분씩만 시켰다. 숯불이라 판을 계속 교체하고 눌러 붙거나 타지 않게 계속 뒤집어야 했지만 그 고생을 할 만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고기를 굽다가도 다 구워지면 먹느라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폭염경보로 사람이 픽픽 쓰러지는 이 더운날 숯불 앞에 있으면서도 수련하는 자세로 계속 추가 주문을 하게 만들 정도로 맛있다. 흔히 생각하던 철판에 볶는 닭갈비가 아니라서 익숙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일단 한 입 먹으면 2인분은 그냥 들어간다.
대부분 닭비린내 잡겠다고 엄청 강하게 양념을 하는데 여기는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양념도 쎄지 않고 먹기에 정말 편하다. 매운맛 대신에 단맛이 좀 느껴지는 것이 설탕으로 잡은 것 같다. 하지만 달달한 맛에 적응된 애기 입맛인 나한테 딱 맞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연령대가 10대부터 70대 이상까지 엄청 다채로운 것보니 꼭 달아서 먹는 것 같지는 않다. 이유야 어떻든지간에 그 고기 참 맛있다.
이게 1인분 조금 더 되는 양이다. 쉽게 눌러붙어서 한눈 팔지 않고 계속 뒤집어야 한다.
밑반찬은 요정도. 부추무침이 너무 맵거나 맛이 강하지 않아서 닭갈비랑 같이 먹기 너무 좋다. 반대로 그만큼 닭갈비가 너무 맛있어서 다른 반찬들이 먹는데 방해하는 것조차 싫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렇게 탄다. 다행이 종업원분들이 매우 어리신 것 같은데도 굉장히 친절하시다. 30분 좀 넘게 밥을 먹으면서 한 두 번 판을 바꾼게 아니라 일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귀찮을텐데도 판이랑 밑반찬을 친절하게 교체해 주셨다.
막국수는 상대적으로 별로였다. 그렇다고 아예 안먹기도 그런 것이 양념과 닭기름때문에 입이 개운치가 않다. 딱 입가심할 정도의 막국수다.
티비에 나온 집 가면 반은 성공 반은 실패인데 여기는 성공 중에서도 완전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