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많이 언급한 것처럼 요즘 가장 즐겨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알쓸신잡'이다. 그 재미있는 프로가 이제 종영을 하여 아주 아쉬웠다. 정말 오랜만에 시즌 2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여러가지 좋은 대화 주제들과 사회문제들을 던졌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부분은 정재승 교수님이 '외국에 나가면 박물관을 가면서 한국의 박물관은 잘 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실제 어딘가를 여행한다고 했을 때 재밌는 액티비티와 맛있는 식사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이 그 나라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는 일이다. 주위에 미술을 전공하였거나 워낙에 그 쪽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은 쉴 때 틈틈이 미술관을 가지만 공대생들은 절대 가지 않는다. 비단 공대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계통이 아닌 사람들은 박물관, 미술관 근처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여행자들이 다 그렇듯 외국에만 나가면 박물관을 방문한다. 문화의 차이를 가장 빠르고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 외국의 박물관을 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박물관에는 너무 안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조차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이번에 친구와 방문하였다. 실은 백수생활하면서 할 건 다해서 재미난게 필요했다
용산 이촌동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깔끔하고 규모도 커서 깜짝 놀랐다. 이정도면 입소문을 타서 '무슨무슨 박물관 베스트 10'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내가 정말 너무 무관심했다. 규모만 봐서는 러시아의 에르미타쥬와 비견될 정도다. 물론 건물의 역사성이 좀 떨어지겠지만 새로 지은 건물의 장점인 깔끔함과 현대식 느낌이 그런 단점을 전부 없앤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되는 남산뷰를 볼 수도 있다.
우선 역사를 다시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구석기, 신석기부터 보았다. 아참, 한국 문화재는 무료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외국인도.
달달 외웠던 그 빗살무늬 토기다. 이 전에 있던 구석기 때의 간석기들은 도대체 자갈밭의 돌과 차이를 모르겠어서 그냥 지나쳤다.
가장 무기다운 무기다. 다른 무기들은 '과연 사람이 죽었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이 도끼만큼은 확실히 사람이든 호랑이든 죽였을 것 같다.
구석기와 신석기는 보고 있어도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학문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에게는 소중하겠지만 재미로 보는 나로써는 볼게 너무 없다. 재빠르게 고조선과 그 이후 시대의 방으로 넘어갔다.
고조선일 때 목걸이 귀걸이 등등이다. 재래시장이나 동남아에서 많이 봤던 모양의 목걸이다.
내가 술먹고 노는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유전임을 알게해준 삼국지의 명문장. 조금은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평남 대동 대동강면에서 발견된 한경(동으로 만든 거울). 신석기까지는 디테일이란 것을 찾을 수 없었지만 고조선과 그 후 낙랑, 부여, 옥저 등의 원삼국 시대로 오면 굉장히 섬세한 문양들이 시작된다.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9호 무덤에서 나온 순금으로 만든 허리띠 고리이다. 낙랑시대의 유물인데 그 당시에 금세공이 이렇게 정교하게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이제 국보, 보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역시 은보다는 금이 국보로 취급된다.
크리스티안 호날도가 전생에 한국인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 호우~
고조선부터는 보물도 나오고 유물들의 디테일이 상당히 높아진다. 중국 시장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유물들도 많은 것으로 보아 중국이랑 문화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던 시대같다. 고조선을 지나 고구려로 옮겨왔는데 관련 유물이 상당히 적다. 우리가 갈 수 없는 땅에 쓰여진 역사라서 그런지 고구려의 위상과는 어울리지않게 공간과 유물이 적었다. 씁쓸하게 백제로 이동했다.
무령왕 금제관식, 국보 154호. 6세기 백제의 (왕)관 꾸미개. 70년대 최악의 일들 중에 문화계에서 벌어진 최악 중의 최악의 일이었던 무령왕릉 발굴에서 나온 것이다. 그 때 못찾고 지금 찾았더라면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무령왕비 금제관식, 국보 155호. 6세기 백제의 (왕비)관 꾸미개. 왕의 것에 비해 확실히 수수한 느낌이 있다.
무령왕비 금목걸이, 국보 158호. 금 목걸이. 위키피디아 보니 두 개가 한 쌍인데 하나는 국립공주박물관에 하나는 여기에 있다.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산수문전, 보물 343호. 전체 문양전 중에 산수문전만 촬영하였다. 설명에는 '무늬벽돌'로 되어 있다. 총 여덟 종류의 벽돌이 있다.
백제는 무령왕릉 발굴 안됐으면 어쨌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들이 많다. 우리나라 역사학계 최악의 발굴이자 국사 가르치던 분들이 박정희를 그렇게 욕하던 사건인 무령왕릉 발굴. 일제가 훔쳐간 여러 무덤과 제대로 발굴 못한 무령왕릉을 제대로 발굴했으면 우리나라에 한 집 건너 한 집은 박물관에서 일하는 가정이고 관광가치도 압도적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뭐 그건 다 과거고 지금 남은건 이것뿐이다.
박물관을 왔는데 왜이리 계속 씁슬한지. 가야로 이동했다.
가야에서 말을 타고 다닐 때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말이 일본말마냥 키가 작다. 실제 고증인지 그냥 만들어보니 작아졌는지 알 수가 없다.
경북 고령, 합천 등등에서 발굴하고 구한 가야시대 귀걸이다. 정말 예뻐서 지금도 가지고 싶을 귀걸이인데 어떻게 착용했을지 진짜 궁금하다. 바늘도 없이 어떻게 귀걸이를 한거지.
가야의 유물들은 금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세공기술이 백제와 그 전에 본 방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역시 금이 짱이다.
이제 우리나라를 통일한 신라로 이동했다. 방 면적이나 유물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 국보 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국보 192호. 허리에 두르는 부분이다. 이 두 개의 국보는 유리관에 보관되어 유독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백제 금제관식과 다르게 이 관과 허리띠는 압도적으로 화려하다.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보물 456호. 실제로 차고 다니면 엄청 까칠거렸을 것 같다.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사용하려고 만든 목걸이는 아닌 듯하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국보 91호. 내가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사책 커버를 장식했던 국보다. 박물관에 적힌대로 '말 탄 사람 토기'라고 외웠다. 보고 있으니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동했다. (한국에서 학생을 다시 하라면 못하지)
배모양 토기. 박물관 설명을 그대로 적으면 "남자는 귀가 크고 혀를 내밀고 있으며, 성기를 크게 드러내 놓고 있다" 성기를 크게 내놓고 있는데 사이즈가 진짜 크다!! 신라인 짱!! 신라인 자부심 쩌는데!!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보물 628호. 금처럼 보이지만 은이다. 화이트밸런스를 다른 것으로 했으면 은처럼 보였을 것 같은데 찍을 땐 생각이 없다. 블로그를 찍을 때 생각이 없는 블로그로 해야하나.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보물 626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 보물 627호. 거울을 통해 아랫면을 볼 수 있게 했다. 잔의 크기를 봐서는 알콜 도수가 낮은 술을 주로 먹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모르지 성기 크기도 상상 초월인데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보물 623호. 이제는 황남대총이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국보 193호. 금을 제외한 보물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물건이다. 금이 안갔으면 지금 쓰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없이 쓸 것 같은 디자인이다. 거기에 신라시대 수입품이다. 당시에 얼마나 소중했으면 유리가 떨어져 나간 부분을 금실로 수리했다. 금 < 유리. 실크로드의 종착지여서 신라가 번성했다고 어디서 들었다. 역시 땅을 잘 사야 한다. 땅과 금. 기억하자. 땅과 금이다.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국보 3호. 거의 보이지 않는 이 순수비가 국보 3호다. 국보의 번호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안보인다. 건물 밖에 많은 비석들이 있던데 그것들도 실내에서 보관하는게 낫지 않을까.
솔직히 첫 문장에 '진흥태왕' 부분이 지워졌으면 아무도 몰랐다.
신라는 통일신라 유물도 있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볼 것도 상당히 많다. 중간중간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보물들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점심 먹고 왔는데 발해부터는 보기가 힘들었다. 일단 앉아서 쉬어야 했으며 특별전인 아라비아의 길도 봐야했다. 어짜피 지하철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서울에 있으니 다음에 다시 오는 것으로 하고 정말 애타게 의자와 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오니깐 유물이 또 있다. 그것도 엄청 웅장한 포스로.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 국보 86호. 고려시대 십층석탑이다. 키가 진짜 큰 것이 이 돌 구하기도 쉽지 않았겠다고 생각된다. 멋져 보였는지 일본놈이 밀반출했다가 영국인 베델과 미국인 헐버트가 반환시켰다고 한다. 밀반출의 대가인 영국과 미국에서 반환을 하도록 해줬다니 대단히 이례적이다. 근데 나라도 이 탑이라면 원래 있던 곳에 두고 싶었을 것 같다.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보물 360호.
더는 못움직이겠어서 콜라 하나와 함께 앉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박물관에서 파는 물건과 음식은 비싸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콜라는 거의 정가다. 두 배 가격을 예상하고 갔으나 의외로 저렴해서 놀랐다.
처음 중앙박물관에 와보니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정말 대포같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과 억지로 애들 끌고 다니는 부모들이다. 전자는 존경스러웠고 후자는 굳이 안저래도 될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어짜피 나중에 심심하면 지들이 알아서 다 봅니다. 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