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을 처음왔으니 당연히 이런 특별전도 처음 와본다. 내 기억에 한국에 살면서 외국의 역사문물을 티비가 아니라 실물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봤는지 안봤는지 아리송할 정도의 상태라고 이해하면 좀 더 쉬우려나. 그냥 안봤다 치자 그래서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특별전이 한 번도 가본적 없는 이슬람 문화권이어서 기대에 기대가 얹어져서 에버랜드 처음 가는 것처럼 기대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내 몸에서 정신을 담당하는 기관, 즉, 뇌만 이렇게 느끼는 것이었고 평방 5 제곱미터에서 누워서 살던 그 외의 모든 기관들은 네 시간동안 구경하겠다고 걸어다닌 덕분에 파업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노는 것도 체력이 좋아야지 죽을 맛이다.
아라비아의 길
특별전 가격이 매번 다 똑같은지 모르겠지만 이번 '아라비아의 길'은 성인 6천원이다. 비싸다고 하기도 싸다고 하기도 애매한 가격선을 잘 정한 것 같다. 내 것 사긴 괜찮은데 친구 것까지 사기엔 부담되는 가격. 짜파게티 생각하면 딱이다.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앱도 팔았지만 그정도로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나 백수다 사진기 하나만 들고 들어갔다. 전시장 안은 이국적인 것을 넘어서 동굴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두운 공간에 유물들만 불빛을 받도록 전시장을 꾸몄는데 이슬람이라는 우리에게는 조금 신비한 문화를 잘 표현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집중하기 쉬웠다.
전시는 사막이 푸르렀던 시절의 유물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중에서 타이마 지역의 유물이 주로 나온다. 몇 개 제외하곤 슥슥보고 넘어가서 전체 흐름은 잘 모른다. 전체 흐름이 중요한거 아니었나
시작하고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포스터에 나오는 유물이 나온다. 기원전 4천년 전에 발견된 석상이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들은 토기와 화살촉같은 것인데 반해 이 지역은 예술품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경제, 문화 수준이 확연히 달랐을 것으로 추측한다.
산호 석회석으로 만든 잔. 꼭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은 재질과 문양이다.
하단에 쓰인 글은 그리스어로 "안녕히"다. 기원전 3-2세기 아라비아에서 발견된 묘비인데 그리스어를 썼다. 그리스어가 지금 영어처럼 공용어였나보다. 그리스 정복하고 그리스어 배운 로마사람들이 괜히 그런게 아니다.
이게 침대 다리다.
소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황금 가면과 장갑.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잣집의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황금으로 다 둘렀나보다. 지금은 그런 전통이 없어져서 진짜 다행이다. 아니었음... 어휴.
기원전 1천년쯤의 사발. 이 때쯤 우리나라서 나온게 빗살무늬 토기다. 교류가 있었나? 꽤 먼 거리의 두 문화의 유물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나보니두스 석비. 아시리아의 나보니두스 왕이 타이마에 머물렀단 증거인데 이 석비는 하나도 안보이고 옆에 탁본 뜬 것을 봐야 형태가 아주 조~금 보인다. 사실 탁본을 봐도 내 눈엔 뭐가 뭔지 하나도 안보여서 그냥 넘어갔다.
묘비. 기원전에 만든 묘비이지만 피카소의 느낌이 난다. 이런 디자인은 지금 사용해도 꽤 호응이 높을 것 같다.
뒤의 배경은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많이 틀어줬는데 더빙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제부턴 울라 지역의 유물이다. 지역에 대한 설명이 적힌 지도가 있었는데 사진을 못찍었다. 직접가서 그 지도를 보면서 유물을 보면 왜 '아라비아의 길'인지 이해가 된다. 일부러 안찍은건 아니다
젖먹이는 사자 조각.
여기부터 까르얏 알파우 지역의 유물이다.
남자의 얼굴. 어떠한 설명도 없다. 볼에 저것은 혹일까? 아니면 입체학파가 기원전부터 있었던 것일까? 다른 어떤 유물보다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사진 보고 설명도 찍었으니 뭐라뭐라 적지 이거랑 뒤에 메카에 달았던 문 말고는 기억에도 안남는다
지금 쓰고있는 차 여과기랑 다른게 전혀 없다. 무려 2천년동안 디자인에 변화가 없다!
헤라클레스. 왜 이슬람 문화인데 헤라클레스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마호메트는 6세기에 등장한다.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 헤라클레스는 엄청 정교하고 멋지게 만들었으면서...
당시 상류층을 그린 벽화. 과일과 하인들에 둘러쌓인 모습이라는데 저 그림을 러시아의 교회에서 본 것 같다.
로마에서 수입한 잔. 지금 그냥 써도 될 것 같다.
1세기에 사용된 병들. 이거 보면서 '얘네들 그냥 지들이 만들고 속여서 전시하는거 아닌가?'할 정도로 지금 병들이랑 차이가 없다. 유리병은 이렇게 잘만드는데 위에 석상들은 왜 저럴까.
로마에서 수입한 값비싼 침대 머리 장식. 무덤에 같이 묻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태리 사치품이 짱이다.
이 병들부터 연대가 갑자기 훅 올라온다. 7~10세기 물건들로 순례자들이 들고 다녔던 것들이다. 돈 떨어지면 병이나 병 안에 들은 것들을 팔았다는데 배낭여행의 시초로 이해된다.
쿠란
'한 손엔 쿠란, 한 손엔 칼을'에 어울리는 쿠란이다. 방패로 썼어도 됐을 것 같다고 생각한 유일한 쿠란. 심지어 시기도 16세기 오스만 왕조 때이다.
카바 신전의 문.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메카 카바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인데 문만 봐도 웅장한 메카가 상상된다. 티비에서 메카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만 봤지 건물이나 문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 문을 보니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샤미 문을 덮는 천. 카비 신전은 아니지만 비슷한 문을 덮는 천이다. 문 덮는 천마저도 화려하다.
돈내고 봤는데 최대한 안까먹으려고 사진찍고 대충 글로 정리했지만 개인적으로 입이 벌어질 정도는 아니다. 카바 신전의 문은 예외. 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좀 더 있었으면 이해가 더 쉬웠을 것 같은데 전시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잡기가 쉽지 않았다. 개인적인 지식의 부재로 발생한 일이니 이 지역을 좀 아는 사람들은 더 재밌게 볼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기억에 남는건 입에 혹 난 남자 두상과 카바 신전 문이다. 두 개 보는데 6천원 냈다고 생각해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