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태운 비행기가 서울에서부터 약 6시간 정도 날아와서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 마지막 착륙할 때 구름을 뚫고 내려오느라 조금 덜덜덜거렸는데 긴장하는 사람들이 약간씩 보였다. 내가 추천하는 이런 '비행기 떨림 공포'를 없애는데는 러시아의 오로라 항공이 최고다. 한 번 타면 왠만한 흔들림은 시몬스 침대급 편안함으로 느껴진다. 하바롭스크 착륙했을 때 정말 앵콜곡 요청하듯 뜨겁게 박수를 쳤는데 벌써 1년이네
막상 공항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동남아의 후덥지근한 날씨가 아니다. 온도가 서울과 비슷해서 내가 동남아에 온건지 동남아에서 온건지 헷갈린다. 게다가 시차도 한 시간 밖에 없어서 별로 졸리거나 하지도 않고 아주 쌩쌩하다. 인천 공항에서 전력질주한 것에 비하면 굉장히 쾌적한 상태다. 거기다 입국하는 곳과 출국하는 곳이 한 곳에 있는 신기한 공항 구조 덕분에 도착해서 면세로 술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별 것 없이 완벽한 공항은 처음이다.
나오자마자 한 것은 유심 구매. 전에 러시아 갔을 때, 유심없이 다녔다가 돈을 아끼기는 커녕 비싼 커피만 계속 먹게되는 불상사가 생겨서 이번에는 아예 저렴하게 구매를 했다. 이번 여행의 모토는 '쾌적하게 혼자 잘 버티기'니깐 돈 조금 쓰는건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사실 러시아에서 너무 궁하게 있었지
요즘 인기가 좋다는 핫링크. Digi보다 낫다는 평이 많아서 선택했다.
바로 앞에 있는 핫링크(이 동네 통신사 중 하나)에 가서 뭐가 있나 보려고 하는데 메뉴가 두 개뿐이다. 우리나라같으면 온갖 조합으로 A4지 하나를 꽉 채우는 메뉴가 있었을텐데 심플해도 너무 심플하다. 메뉴도 아주 간단하다. 하나는 전화가 되고 하나는 안된다. 좀 자세하게 읽어보려고 했지만 별로 읽을 것도 없고 이미 내 뒤에서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시작했기 때문에 급히 돈을 건냈다. 아! 참고로 현금만 받는다. 돈과 핸드폰을 건네주니 정말 빠르게 심카드를 교체한다. 돈도 얼마를 되돌려 받았는지 제대로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거래가 진행된다. 내가 다닌 모든 동남아시아는 느리고 여유로워서 물건을 사는 나도 느긋했는데 여긴 첫 가게부터 서울 뺨치는 속도다.
인터넷 설치가 되었으니 이제 택시를 불러서 호스텔로 가면 오늘의 임무는 모두 클리어한다. 여행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나 혼자 오는 것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여행계획을 전부 계획했던 울면서 서울에서 사람 고치고 있을 친구의 조언에 따르면 "Grab" 또는 "Uber"를 이용하라고 하였다. 특히, 그랩이 말레이시아에서 인기가 좋으니 이동할 때는 그것을 사용하라고 강조에 강조를 한다. 그럼 따라 오던가.. 이런 사설 택시 어플리케이션이 불법인 한국에서 살다가 여기와서 처음 사용하려니 떨린다. 마음을 진정하고 그랩에서 목적지를 적고 용기를 내서 호출 버튼을 꾸욱~ 누르니 자기 혼자 뱅글뱅글 심각하게 찾더니 운전수를 연결했다. 메신저를 통해서 출구 번호를 전달하니 5분정도 지나 차가 도착했다.
카카오 택시가 있지만 그래도 진짜 대박 신기하다!
그랩기사가 "웰컴 투 코타키나발루"라고 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이 낯선 곳을 대낮도 아닌 아주 야심한 시각에 떨어진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두 개다.
호스텔로 가는가? 사기치지 않는가?
일단, 호스텔로는 잘 왔다. ASTRO가 목적지인데 (후에 알았지만 코타키나발루 지역 방송사라 운전수 대부분이 다 알고 있다) 정확하게 도착했다. 불안하게 여기가 정말 호스텔 맞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처음 오는 내가 그걸 알겠소? 능숙하게 운전을 하여 호스텔 바로 앞에 도착했다. 이제 문제는 얼마를 요구하냐이다. 10% 더 달라고하면 더 주고 그 이상이라면 욕을 바가지로 할 생각에 영어로 말할 욕부터 생각했다. What the f*** are you doing? 분명 앱에서 내게 알려준 요금은 8링깃이다. 필리핀이라면 30정도를 달라고 했을거고 발리였으면 15정도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서울은 아예 미터기도 키지 않고 20만원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정확히 8링깃을 달라고 한다. 진짜 대박이다!! 공항에서 출발한 택시가 관광객에게 돈을 그대로 받다니!!! 내가 그 동안 여기저기 다녔지만 법을 잘 지킬 것 같은 서유럽이고 나발이고 거의 모든 택시기사들은 돈을 더 달라고 했다. (일본 제외) 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서만큼은 딱 8링깃을 달라고 한다. 그것도 밤 11시라서 더 달라해도 별 수 없는 상황인데 약속된 금액만 요구한다. 정말 너무나 감동이다. 택시기사가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8링깃 이후에 혼자 한국말로 대박! 우와! 이렇게 세레모니를 한 뒤 거스름돈을 안받고 팁으로 드렸다. 적은 돈이지만 이 분은 이걸 받을 자격이 있으시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최악이었는데 말레이시아 도착하고 모든게 괜찮아지고 있다.
호스텔 앞에 있는 AIA간판. 이 바로 맞은편에 호스텔이 있다.
못찾을까 걱정했는데 작지만 확실하게 호스텔 간판?이 있다.
이번에 묵게된 호스텔은 Faloe Hostel이다. 호스텔월드에서 무려 1위를 하고 있는 대단한 호스텔이다. 서울에서 온 동네 할머니들과 오붓하게 웃으며 진료보고 있을 친구가 강력하게 추천하며 같이 침대를 예약하고 혼자 취소한 곳이다. 일단 오기 전까지 호스텔의 느낌은 굉장히 좋았다. 오는 경로 등을 메일로 받았는데 그 안에 굉장히 자세하고 기사들에게 알려줘야할 사항들까지 꼼꼼하게 적혀있어서 호스텔만큼은 안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정말 대박 좋다!!!
나는 나중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다. "저는 커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처럼 그냥 좋아보여서 하고 싶은 막연한 꿈이다. 그런데 여기와서 그 롤모델을 찾은 것 같다. 총 7일을 이 곳에서 묵었는데 단 한 순간도 불편한 적이 없었다. 부부가 웃으면서 서로 오손도손 운영하는 꿈에 그리던 호스텔이다. 거기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딱 하나 단점이라면 소개해주는 여행 패키지가 굉장히 비싸서 직접 알아보는게 더 좋다는 점 뿐이다. 그 여행사 너무 비싸... 제발 다른데도 좀 알아봐봐
주방
세면실과 세탁실
널부러져서 티비보는 휴게실. 넷플릭스와 ps4가 있다! ps4맞나? 여튼 플스가!!
매니저 Sarah
Ryan과 Sarah 부부가 직접 운영을 해서인지 굉장히 청결하다. 매일 낮에 닦고 빨고 정리하는게 일이다. 거기다 사람들이 왜이리 착한지 물어보거나 요청하면 너무 잘 대답해준다. 초반에 팁 오브 보르네오에서 서핑을 할 생각에 침대를 취소했는데 그런 병신짓을 도대체 왜 했는지 짜증날 정도로 너무 편하게 지냈다. 여기서 만난 필리핀 친구들과 투어도 같이하고 또 다른 외국 친구들과 꽐라가 되도록 술마시고 놀았다. 아마 다른 곳에서라면 그냥 침대에서 잠만 잤거나 주변만 배회했을 것 같은데 이 곳은 이상하게도 밝고 서로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있다. 참 별거 없이 매일 청소, 빨래, 정리한 뒤에 11시에 집으로 가는 주인들인데, 어찌보면 24시간 지키고 있는 곳보다 일도 덜하는데, 무슨 노하우인지 사람들이 여기만 오면 반쯤 무장해제를 한다.
영어 못해서 걱정인 사람들도 별로 문제 안된다. 번역기 사용해서 대충 단어로만 말해도 된다. 와이파이 엄청 빵빵하다. 나도 절반 이상은 뭔소린지 몰랐는데도 알아서 알아 듣더만.
호스텔에 대한 자세한 장단점은 트립어드바이저에 적어놨으니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분명 26일 공항에 내려서 무슨 일 했는지 쓰려 했는데 호스텔 홍보 글이 되었네.
경비
- 비행기 273500원
- 공항 버스 14000원
- 면세점 술 RM 70
- 숙소까지 Grab RM 10
- 심카드 RM 30 (아마도?)
하루 쓴 비용 287500원 + RM 110
여행 총 경비 287500원 + RM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