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느리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에 완벽하게 적응을 했는지 게스트하우스에서 열시에 빈둥거리며 일어나 밥먹고 멍때리며 게으름피우다 열한시 반에 나왔다. 오전을 이렇게 그냥 날려도 되나 걱정도 되지만 혼자 늘어지는 것만큼 최고의 휴가가 어딨냐는 생각이 다시 든다.
오늘은 그동안 제셀톤 포인트에 가서 맛만 보고 돌아왔던 섬 투어를 하나 가기로 했다. 그랩을 타고 제셀톤 포인트를 가는데 그동안 한 번도 막히지 않았던 코타키나발루 도로가 왠일로 꽉꽉 막혔다. 그랩 드라이버가 말하길 몇 일 뒤에 국경일이라서 군인들이 기념 퍼레이드를 하고 있단다. '내가 지금 사피섬이 아니라 저 퍼레이드를 봐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봐야 군바리들 걸어다니는건데 뭐 재밌겠냐' 싶어 가만히 차를 타고 갔다.
이런 교통체증 보기도 힘든 도시인데 운이 참~~~ 좋다. 아주 운이 넘쳐 흐른다.
제셀톤 포인트에 내려 표를 사려하니 혼자서는 배를 못탄다고 한다. 한국처럼 여객선이 정해진 시간에 반복적으로 왕복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면 그제서야 배를 띄워 보내는 시스템이다. 이걸 모르고 그냥 무턱대고 모든 가판대에 가서 사피섬 가격을 물어봤지만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배를 띄워주지 않는다. 전부 돌아오는 대답은 "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뿐이지 표를 주지 않는다.
'오늘도 못가는구나...'
의자에 포기하고 널부러져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니 '그럼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을 다 모아서 팀을 만들면 되겠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뚜두두두 레이더를 켜고 찾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당연하지만 지금 이 공간에서 제일 예뻐서 선택했다. 이제 목적지가 사피섬인지 마누칸섬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국으로 가도 상관없을듯 슬쩍 옆에 다가가 '어떻게 하면 같이 배를 탈 수 있을까'만 집중하여 여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짧게짧게 영어로 표 판매원과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기 팀은 다섯명이고 사피섬에 간다고 말하는데 판매원이 너네도 사람이 부족하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끼어들어서 "나도 사피섬 갈거야!! 얘네랑 같이 갈께!"라고 말했더니 '아! 너도 있었지'란 표정으로 OK 사인이 떨어졌다. 드디어 사피섬에 갈 수 있다!!
오른쪽 중국 팀(+남자아이)
나와 같은 배를 타는 중국 팀은 부부 한 명과 아들 한 명 그리고 와이프 친구 둘로 구성된 우리가 생각하기엔 조금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친구인지 동생인지 정확하지 않은데 생김새가 전혀 달라서 친구로 자체 결정 젊은 부부가 아이와 함께 해외에 가는데 짐짝처럼 끼면 눈치없다고 잔소리를 바가지로 할 한국에서 줄곧 살아온 내 눈 앞에 실존하는 이 여행구성이 굉장히 신기하다. 내가 신기해하면서 이 가족 주위를 배회할 때, 가족들 챙기고 와이프 친구들 챙기고 거기에 왠 삐쩍마른 한국놈까지 짐짝처럼 껴서 멀뚱멀뚱 있는 상황을 맞이한 이 집 남자는 말이 완전히 없어졌다. 닥치고 있다가 조용히 배나 타야겠다.
이거 한 장 받기 참 힘들었다.
표를 받고나면 선착장 입구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여성분들을 앞세워서 사피섬으로 출발합시다!!
팁
오전 10시에 가면 그 땐 사람이 많아서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사피섬과 마누칸섬은 가게간의 가격차이가 그리 나지 않으니 그냥 아무데나 이쁜 여자가 표 사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경비 (보수적으로 계산하여 x 300원 하면 한국돈으로 계산 됩니다)
- 제셀톤 포인트 이동 RM 13
- 물 RM 3.4
- 사피섬 배 값 RM 30
- 사피섬 입장료 RM 10
- 코코넛 RM 15
- 숙소로 이동 RM 14
- 저녁 미마막 RM 19.1
- 과일 샐러드 RM 17.5
하루 쓴 비용 : RM 122
여행 총 경비 : 2875000원 + RM 72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