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KTX가 생겨서 '강릉이나 가볼까?'하고 엄마랑 강릉에 놀러갔다. 도착하자마자 차 빌리고 한 일이 밥 집 찾기. 엄마가 왠일로 검색해서 알려준 곳이 이번에 쓸 '테라스 제이'이다. 슬쩍 다른 블로그를 봤을 때 가격이 다른 집보다 높아서 입이 짧은 우리집 식구들이 가서 다 먹고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다른 옵션도 딱히 없는 듯하여 '에라 모르겠다' 하고 렌트카를 끌고 달려봤다.
기차 도착 시각 등으로 인해 늦은 점심인 2시반에 도착했다. 비수기라 그런지 예약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예약은 10명 미만은 받지 않으시는 듯하다) 하지만 이 곳 택시기사님이 KTX가 뚫린 뒤로 강릉을 방문하는 인구 수가 세 배쯤 늘은 것 같다고 하셨으니 비수기에도 기다려야 하는 집이 될지도 모른다. 주의할 점은 서울처럼 중간에 쉬는 시간(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곳이니 피해서 오는 편이 좋다.
외관이 아주 좋은 호텔 레스토랑 같지는 않지만 동네 식당같지도 않다
인공 연못을 건너는 입구
날이 추워서 그런지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다. 살얼음이 껴있을 정도였으니 다 어딘가로 피신시키셨나
그냥 대나무인가 했는데 엄마가 저 검은색 대나무가 '오죽'이라고 유명한 대나무라고 한다.
일단 들어서자마자 배가 아파 화장실부터 갔는데 아주 청결하다.
개인적으로 이 집에서 가장 예쁜 공간이라 생각한다
창문은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더러웠지만 바다보면서 회먹는 딱 그 느낌이다
실제 가족인지 아니면 호칭만 '엄마, 아빠'로 부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일하는 분들끼리 끈끈함같은게 느껴진다. 잘 모르겠지만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같다. 내가 다녀봤을 때 가족끼리 운영하는 곳이면 의례 건물이 낡은 그대로 사용하거나 인테리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 곳은 좀 특별하다.
우선, 가게 홈페이지가 꽤 돈을 들인 것처럼 고급스럽다. 처음에 홈페이지만 보고 호텔급 레스토랑을 생각했을 정도다. 긴가민가한 기분을 누르고 가게에 도착을 하면 가게 건물은 건축가가 지은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예쁘다. 입구에 들어설 때 작은 인공 연못을 건너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은 화장실 세면대라던가 계단을 빙글빙글 돌면 나타나는 가게까지 일반적으로 여행지에 가면 보는 맛으로만 승부하는 레스토랑이나 식당이 아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들 중에 이런 높은 인테리어 퀄리티를 가진 곳은 처음 와본다.
이 음식들은 주문하면 더 주셨다
전복없는 전복죽이라며 입이 삐죽나왔지만 미역국은 괜찮다. 바다냄새라며 비린내 한가득 담긴 내가 싫어하는 그런 미역국이 아니었다
긴따로 구이. 뭔지 몰랐지만 요리의 대가인신 '조리 김쉐프'님과 함께 다니니 모든 재료를 알 수 있어 참 좋다. 참고로 긴따로는 비린내가 안나서 구이로 먹기 좋다고 한다
왼쪽에 펼쳐진게 광어, 뭉쳐진 것중 왼쪽이 도다리, 오른쪽 두 줄이 우럭이다. 나는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손이 계속 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막 썰어서 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접시가 비칠 정도로 썰어 놓은 것도 인상 깊었다.
찌는 시간이 오래 걸려 한참 기다린 오늘의 하이라이트 국내산 대게. 다리가 없는 이유는 사진 찍기 전에 엄마가 후다닥 하나 집어가셔서...
먹기 좋게 손질은 당연히 되어 있고 살도 탱탱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대게는 오래 두면 스트레스 받아서 살이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산지에서 먹어야 하는 대표적인 음식인데 확실히 서울보다 살이 꽉 차 있다. 내 생각에 서울이나 강릉이나 러시아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살이 쪽 빠질 것 같지만 뭐 눈 앞에 있는 다리에 살이 통통하니 할 말이 없다.
대게 다음으로 가장 맛있는 매운탕. 나를 포함한 우리집 식구들은 회 파는 가게를 정할 때 주의 깊게 보는 것이 밑반찬(스끼다시)이 많으면 별로 못하는 집이라 생각한다. 여러가지 다 잘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집은 밑반찬은 김치 몇 개 밖에 안나오는 우리집 기준에 딱 맞는 곳이다. 그리고 그 기대치만큼 정말 기가 막힌 매운탕이 나왔다. 음식을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리는데 앞 테이블의 할아버지께서 술에 완전히 취해 자식들에게 부축되어 나가셨는데 이 매운탕을 먹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정말 차 없으면 소주 한 병 그냥 들어갈 감칠맛이 너무나도 풍부한 매운탕이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창가쪽에 앉아 주문한 것은 대게세트. 국산은 무게가 덜 나가 조금 싸고 러시아산은 살이 튼실해서 비싸다고 한다. (키로당 가격은 같으나 러시아에서 온 게들이 무거워서 비싸다) 국산으로 시켰음에도 2인이 먹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인 18만원(코스요리)이 나왔지만 먹고 나니 '음 그 정도 할 수 있지'란 생각이 든다. 가격때문에 '추천하기 부담스러운 가게'로 정할까 싶었지만 음식 재료가 비싸게 시작하는 대게여서 다른 곳에 가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짜피 큰 돈 내서 대게 먹을거라면 요리 잘하는 이 집으로 추천하는게 맞는 것 같다. (대게만 먹으면 키로당 10만원이다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
리모델링한지 얼마 안됐나보다. 이런 작은 가게도 브랜드 전략을 쓰려고 하다니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