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저녁을 먹고 집 나갔던 정신을 겨우 되찾아 온 뒤에 호이안의 밤거리를 다시 천천히 걸으니 눈이 번쩍 뜨인다. 대도시의 야경처러 밝지는 않지만 차분함에 디테일이 살아있는 등이 밝히는 빛은 그 어느 도시에 비교할 수 없다. 호이안의 명물인 등은 낮시간에는 숨바꼭질하듯 모든 가게와 집에 꼭꼭 숨어 있다가 해가 떨어지고나니 "이제 내가 일을 해줘야 할 차례군"라며 서로 환하게 밝게 빛난다. 유네스코 유산이 꼭 아름다워야 지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평가자들이 이 곳에 와서 이 밤거리를 보고 마음 속으로 추가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낮시간의 호이안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호이안 등은 일본 스타일 같으면서 중국 스타일 같은 매우 독특한 모양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 두 나라의 상인이 자주 다닌 항구라서 그런가?
짐을 넣을 공간이 없어서 안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반드시 사왔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해가 떨어진 호이안에서 관광객이라면 꼭 해야할 일이 있다. 조그마한 나룻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나가 소원을 빌고 돌아오는 투어라 부르기는 아주 짧은 경험 쌓기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투어는 다리를 건너거나 강 근처에 가면 호객행위를 하는 여러 사공들 덕분에 미리 예약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가격은 배 하나 빌리는데 20만동, 우리돈 약 1만원이다. 딱히 정해진 가격이 없기때문에 여러사람 모아 놓고 흥정을 하면 할 수록 싸진다. 물론, 모든 동남아 국가와 다른 여러 관광지가 그렇듯 매해 물가가 올라갈 것이니 2018년 물가라는 것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밤 10시가 가까워지니 이제 배를 타는 사람들도 적어지고 사공들이 급해지는 시간이다. 몇 명 없는 도전자들을 가뿐하게 제치고 흥정 후에 좋은 가격(물론 나는 세계적 호구라 아마 이것도 비싼 것이겠지만)에 배를 빌렸다. 우리를 인도한 사공의 배는 정말 불안불안하게 생겼다. 그래도 이미 선금은 지불했고 설마 빠지면 구해주겠지란 생각에 이를 악물고 나룻배배에 몸을 싣고 강으로 나아갔다. 오늘만 두 번 배를 타는 신기한 날이다.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우리를 비웃듯이 사공 아주머니는 정말 아주 천천히, 기어가듯이 배를 이동시킨다. 긴장이 풀리니 다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 위에서 보던 강도, 강 위에서 보는 마을도 아름답다. 반짝이는 마을에 심취해 있다보니 이제 기도하고 연등을 올리라고 불을 켜서 우리에게 주신다. 가족의 건강과 그 외의 재물 등등 복잡한 머리 속에 있는 것을 한 번 읊어보니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종교를 갖고 있는 내게는 어짜피 일종의 퍼포먼스이지만 그래도 기도를 할 때면 시간이 항상 오래 걸린다. 돌아오는 짧은 길에 밤에만 이렇게 영업하지말고 낮에도 배를 운영하면 "베트남의 베니스"란 별명이 더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베니스를 가보지 않았지만 해가 떨어진 이후라면 베니스가 "이탈리아의 호이안"이라 불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밤의 호이안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
금방 물 위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꽤나 시간을 들인 후에 물 위로 옮겨진 등. 부실하게 생겼지만 마음이 담기다보니 애지중지하며 다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