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이제 호이안의 꽃이라고 하는 호이안의 야시장을 둘러봐야 하는데 몸은 천근만근이다. 몇 일 지난 것도 아니고 오늘이 첫 날인데 이 엘리트 노가다꾼의 아주 잘게 자르다 못해 분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전지훈련급 스케쥴에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이럴거면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가지 무슨 휴양을 꼭 해야겠다고 준비도 하나 안하게 만들고는 트래킹보다 더 걷고 더 움직인다. 이렇게 힘들지만 그래도 야시장은 봐야하고 밥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
밥을 뭘 먹을까 야시장을 슥슥~ 둘러보는데 꼬치구이도 팔고 과일도 판다. 확실히 낮보다 길거리에 파는 음식도 많고 냄새도 아주 매혹적이다. 하지만 "제대로" 그 놈의 제대로 먹기 위해 길거리는 모두 스킵하고 식당을 둘어보았다. 그 중 한국 블로그에서 극찬을 했다는 쌀국수집에 도착했는데 돈을 호텔에 두고 나왔다. 허탈함이 몰려왔지만 가게에는 죄다 한국인이었던터라 사실 별로 마음에는 들지 않았었다. "옳다구나! 그럼 딴거 먹자"하고는 숙소 근처를 배회하다 골목 끝자락에 있는 포장마차와 비슷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이번엔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유명해진 집인지 백인들이 가게 하나를 가득 채웠다. 어떻게 낑겨서 먹어볼까 했지만 자리는 나지 않았고 옆에서 혹시나 우리가 들어올까 초롱초롱한 눈을 하시던 아주머니와 아이 컨텍을 하면서 옆집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쌤쌤 쌤쌤~~"이라며 어짜피 같은 음식이란 것을 강조하시던 아주머니는 냅다 메뉴판을 들고 오셨는데 오우~ 꽤나 맛나 보이는 것들만 있다.
휑~ 하길래 별로 맛없을 줄 알았는데 호이안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가게가 되었다
내가 고른 것은 상단에 있는 메뉴인 15000원짜리 "크랩 쿠아" 와
아래쪽 메뉴인 5천원짜리 오징어 "묵"(?? 맞나???)
메뉴를 보고 놀랜 것이 게 요리가 고작 15000원이다. "한국에서 해물찜이 작은 것을 시켜도 5만원인데 뭐 이렇게 싸지?"라는 생각에 그리고 "게 요리는 오래 걸릴테니깐 앉아서 오래 쉴 수 있을거야"란 생각에 나는 주저없이 게 요리를 시켰다. 그리고 친구는 자기는 밥이 꼭 있어야 한다며 오징어 볶음밥으로 추정되는 음식을 주문했다.
처음 보는 맥주인 '사이공'을 마시며 정말 원 없이 푹 쉬었다. 푹 쉬었다는 느낌마저 지나가서 "오늘 안에 요리가 나올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음식이 나왔다. 물론 게 요리는 아니다. 한 끼 든든히 먹으려고 볶음밥을 시켰지만 사진과는 전혀 다르게 오징어 볶음 따로 밥 따로 나온다. 뭔가 예상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한숨과 함께 오징어를 먹었는데!!! 진짜 너무 맛있다. 이건 사실 요리를 잘한게 아니라 그냥 오징어가 너무 신선하다. 오징어하면 징걸징걸 씹는 것이 떠오르는 재료지만 달달하게 소스한 이 오징어 볶음은 아주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푸딩처럼 부드럽다. 둘이 한 입 씩 먹어본 다음에는 말도 없이 쑤셔넣기 바빴다. 이 집이야 말고 숨어 있던 고수다.
오징어 볶음은 애피타이저처럼 배만 더 고프게 했고 게는 오징어를 다 먹고 나서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가 빨리빨리의 민족이라지만 고수에게 재촉을 했다만 맛없는 게 요리가 나올지도 몰라 애꿎은 사이공 맥주만 다 마셨다. 한 30분 기다렸을까? 드디어 대망의 게 요리가 나오셨다.
15000원 짜리 게가 내 손바닥보다 크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오셔서 살도 삭삭 발라서 이거 먹으라고 쥐어주신다. 살이 탱탱하다. 하지만 진짜 포인트는 소스다. 도대체 소스에 무슨 짓을 하셨는지 공기밥을 하나 더 주문하게 만든다. 칠리크랩하면 매운 맛이 떠오르는데 이 집 칠리소스는 단 맛이 주를 이룬다. 덕분에 초딩입맛인 내 입맛에는 퍼펙트한 맛이다. 심지어 무슨 만오천원짜리 게가 알도 실하게 차 있어서 밥에 비벼먹는 맛이 끝내준다. 힘들어서 오래 앉아 있으려고 시킨 게 요리였는데 완전히 한 대 맞았다.
물론 베트남의 면 요리는 정말 맛있다. 머리 속에 베트남 하면 "면"이 떠오를 정도로 육수와 면의 조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출중하다. 하지만 호이안에 왔다면 꼭 해산물을 한 번 먹는 것을 추천한다. 상상외로 괜찮은 식도락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