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좋아는 하지만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지간한 술은 다 좋아한다) 와인은 접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뭔가 수학 공식처럼 되어있는 국가, 포도 종류, 연도, 맛, 떨떠름한 정도 등을 고려해서 이미 머리 속에서 맛을 느낄 정도는 되어야 와인 좀 먹는다는 소리를 해야 할 것 처럼 어렵다. 술 먹는게 어려운 것도 짜증나는데 대부분 레스토랑에서 추천하는 와인은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심지어 데이트에서 먹는게 주된 이유인지라 남성들의 경우 추천을 하는데 거절하고 저렴한 술을 선택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에 자주 휩싸이게 된다.
이렇게 '어렵고 비싸며 자존심에 스크래치까지 주는'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한국에선 상당한 도전정신이 필요한 법인데 내 식도락 스승께서 이번에도 친히 와인이 저렴하고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주었다.
인테리어도 상당히 깨끗하고 깔끔하게 되어 있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에 있다보니 회사가 문을 닫는 주말에는 조금 한산해서 사장님 부부께서 생각하신 인테리어를 더 느낄 수 있다. 주중에 오면 아무래도 만석이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라 차분한 화이트톤의 인테리어를 느끼기엔 주말이 더 좋다.
사장님 내외께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드리면 정말 여러 조합으로 지금 먹기 좋은 와인을 알려주신다. 단순히 외워서 읊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있으면 "그냥 아무거나 추천해 주십시요. 사장님이 고르신거면 뭐든지 좋을 것 같습니다"란 말이 알아서 나온다. 불어를 사용하시는 모습이나 와인에 대해 지역과 연관되어 설명해 주시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 오래 지내신 것 같다. 와인 맛이랑 관계는 없지만 왠지 모를 신뢰가 강하게 쌓여 뭐가 나와도 "어유 여기 참 좋구나"하게 만드는 매력을 두 분 모두 가지고 계신다.
특이하게도 아이패드에서 메뉴를 고른다. 아래의 링크로 가면 메뉴와 사장님이 짧게 쓰시는 블로그도 있다. 테이블마다 QR코드도 있는 것을 보면 IT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아니면 관련 일을 하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분위기나 메뉴에 비해 가격은 정말 저렴하다. 물론 소주 가격보다야 비싸겠지만 꽤나 괜찮은 와인을 5만원 미만으로 판매하고 계신다. 1병을 꼭 시킬 필요도 없고 한 잔씩 주문 할 수도 있다. 한 잔 마셔보고 "오~ 이건 상당히 괜찮은데?" 하면 한 잔이 아니라 한 병을 주문하는 것이다. 사실 와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게 비싼건지 싼건지 나는 모르지만 다른 가게에서 동일한 것을 먹었을 때의 가격 차이를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어보니 남는게 있으신지 걱정이 될 정도다. 와인을 주문하면 그 와인에 대한 짤막한 설명과 어떤 포인트에 신경을 써서 맛을 느끼면 되는지 알려주시고 음식과의 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잘 설명해 주신다. 그래서 나처럼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먹어보니 맛은 있더라'라고 말하는 초보자들에게 재미를 주는 매우 독특하고 재밌는 레스토랑이다.
진짜 싼지 검색해보니 라쿠텐 가격보다 2배다.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면세나 인터넷에서 파는 가격의 3배 정도를 받으니 저렴하긴 확실히 저렴하다
이건 먹으려고 한 점 올린 스파게티인데... 올릴까 말까 하다가 너무 쳐먹어서 사진이 워낙 없다보니...
이 와인도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보다 2배가 안되는 가격이다. 프랑스에서도 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다
음식은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화려하거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정말 가정식의 느낌이 있다. 볼로냐 스파게티도 그렇고 스테이크도 그렇고 집에서 해먹는 느낌이다. 화려하거나 보기 힘든 재료들로 신기해하며 먹는 음식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이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 음식들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음식을 고르면 적당한 와인을 추천해 주시기 때문에 메뉴를 고르고 와인의 가격대를 고르면 정말 최상의 조합을 맞춰 주실 것이다.
직장인들은 좀 힘들겠지만 점심시간에 와서 스파게티에 와인 한 잔 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아니면 퇴근하는 길에 3천5백원짜리 올리브 하나 시켜놓고 와인 한 잔 마시면서 창밖을 멍때리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뭐가 됐든 와.알.못이 친절한 가이드를 받으며 속은 느낌 전혀 없이 온전히 식사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게 된 것 같아 매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