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짐을 풀고 슬쩍 한옥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다. 건물은 한옥 기와라 다른 곳에 온 것 같지만 어울리지 않는 네온사인들이 이상한 조합의 메뉴와 함께 반복되었다. 또, 이정도 관광단지라면 쉴 곳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볍게 간식을 먹으면서 시원하게 쉴 곳이 없다. 게다가 찌는듯한 여름이라 살짝만 걸었는데도 포카리스웨트를 찾을 정도로 자비 따윈 개나 줘버린 날씨 속에서 걸었다.
한옥마을에서는 제대로 쉬는 게 힘들 것 같아 쉴 곳을 검색해보니 조금 걸어가면 빵집이 하나 있었다. 이렇게 대충 쉬고 싶어 찾아간 빵집은 오월의 종 이후로 점심 이후에 빵이 다 팔려서 고를 것이 거의 없는 두 번째 인생 빵집으로 기록 되었다.
텅 빈 매대를 보고 남은 빵이라도 급하게 주문했다. 점심으로 먹은 떡갈비가 이미 소화가 되었기에 남아있던 얼그레이 크루아상과 포카치아에 쿠키 몇 개 하고 에이드를 잔뜩 주문했다. 그만큼 오늘 날씨가 살인적이다. "이거 다 주세요"라는 어디서도 하기 힘든 중국 졸부 같은 주문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니 한옥마을과 느낌이 전혀 다른 공간이 나왔다. 한옥마을 안의 가게들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억지로 섞어서 굉장히 촌스러웠는데 여기는 인테리어가 서울처럼 하나의 톤으로 정리가 되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오면서 안정이 된다. 가장 전통적인 전주에서 가장 유럽 스타일의 카페를 오고 편해지다니 서울 촌놈인 것은 숨길 수가 없나 보다.
음식이 준비되었다. 일단 시원하게 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 얼마나 빵이 맛있길래 다 팔렸나 싶어 얼른 크로와상을 하나 베어 물었다. 오우.. 확실히 카페에서 대충 파는 빵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달달하면서 바삭한 겉면에 씹는 식감은 너무나도 부드럽다. 잡내같은 것도 나지않고 씹는데 방해하는 요소도 없고 씹을수록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시골 동네 빵집이라 그냥 어쭙잖게 눈대중으로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울과 남양주의 어지간한 베이커리들보다 괜찮다. 크로와상만 먹어서는 왜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전주에서 가게를 하는지 의아할 정도다. 여행메이트인 4살짜리 친구 딸도 크로와상이 괜찮았는지 배부르다고 떡갈비는 남겨놓고는 크로와상 하나를 혼자 다 먹는다. (아빠란 놈은 그거보고 물개박수치며 난리...)
포카차야는 꼭 작은 피자를 먹는 느낌이다. 빵이 진열된 곳 옆에서 사장님이 계속 들락날락하는데 실제로 빵을 만든다. 요즘에 서울의 대부분의 카페가 빵을 외부에서 사 와서 따뜻하게 데워서 제공하는 곳들이라 포카차야 같은 빵들은 가끔 덜 익혀져서 돌 씹는 것 같은 기분인데 만든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빵이 부드러워 계속 먹게 된다. 최근 빵 먹고 이렇게 감탄한 건 한남동에 있는 오월의 종이랑 양재에 있는 빵집 뿐이었는데 그것들과 조금은 다른 스타일의 빵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물개박수치며 먹었다.
하도 맛있어서 검색을 해봤더니 부부가 모두 제빵을 하고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고 한다. 하도 조작이 많아서 네이버 평점을 안 믿었는데 이번만큼은 제대로 맛집으로 안내해줬다. 1층에서 계산을 하러 내려가니 남아있던 식빵이며 꽈배기 같은 것도 전부 팔렸다. 그럼에도 꾸준히 사람들이 방문하고 빵이 없어 실망하면서 돌아간다. 이 동네에서 정말 유명한 빵집인가 보다.
빵 먹고 '이 집은 작정하고 포스팅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메뉴판을 안 찍었다. 대충 가격은 아메리카노가 3천 원이고 대부분의 빵이 3-5천 원 사이다. 전주라서 그런지 확실히 서울에 비해서 저렴하다. 서울서는 코스트코 빵 데워서 주는 것도 5천 원이 넘고 호수나 산을 보며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셨다가는 만원 가까이 내야 하는데 고작 만원에 커피에 빵 두 개를 먹을 수 있다. 한옥마을 안에서 느낀 물가는 서울이랑 똑같다고 느꼈는데 고작 200m 정도 나오니 물가가 확 떨어진다.
지방에서 성공하면 서울에 다 넘어오기 때문에 맛집은 서울에 다 있다고 하던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전주는 확실히 음식과 관련해서는 뭔가 다르다. 심지어 빵집조차 뭔가 다르다. 전주 한옥마을에 간다면 무조건 중간에 베이크 앤 칠에서 빵순이 타임을 갖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