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주 흑돼지, 이서림-고기집은 고기와 함께 먹는 반찬이 맛있어야 진짜 맛집 20210910

구제주 흑돼지, 이서림-고기집은 고기와 함께 먹는 반찬이 맛있어야 진짜 맛집 20210910

Foodie/제주, 서귀포에서 갔던 모든 식당, 카페들

2021-09-15 02:11:12


여행의 마지막 저녁이 될 식사. 여행을 마치기 전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기 위해서 음식과 관련되어 신뢰가 높은 사람들이 추천한 집들을 찾아봤다. 백종원부터 시작해서 주변에 먹는 것 좀 좋아하는 사람들이 알려준 집까지 다 훑어봤다. 하염없이 찾는데도 뭔가 딱 꽂히는 것 없이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전 회사에서 회식자리 추천이 믿을만하여 '성슐랭'이라 불리던 분께서 추천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 근처에 있고 메뉴도 소주 한 잔 먹기 좋은 흑돼지구이라 씻고 바로 움직였다.

대부분의 제주 생고기 구이 식당들이 흑돼지를 간판에 적었지만 이서림은 참숯 생고기 전문점을 타이틀로 두었다. 그래도 목적은 흑돼지라 흑돼지를 주문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날은 흑돼지가 다 나갔다고 하여 그냥 제주 오겹살을 주문했다. 제주 토박이들은 흑돼지가 왜 유명한지 모르겠다고 자주 말하는데 서울 촌놈인 나는 그 차이를 더 알 수가 없어 사실 흑돼지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었다.

고기 나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려 밑반찬들을 슬쩍슬쩍 먹어봤는데 김치 빼고는 모든 반찬이 맛있다. 제주 김치가 원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김치 맛이 육지에 비해 맹맹한 것을 넘어 아무 맛도 안 난다. 김치 빼고는 모든 반찬이 내 입맛에 맞으면서 서울과 달라 재밌다. 특히 파무침은 서울처럼 매콤한 맛이 아닌 상큼한 맛이 더 느껴진다. 일반적이지 않아 '뭐지?'란 생각이 들지만 굉장히 맛있어서 계속 손이 간다.

고기를 올려주시고 우리가 시킨 소주를 따시더니 멜젓에 홀짝! 하고 넣어버리신다. 서울서도 몇 번 본 장면이지만 말도 없이 확! 하고 넣으시니 깜짝 놀랐다. 소주도 맛으로 친다면 저기 넣는 소주의 맛이 중요할 텐데 어떤 소주가 가장 맛이 좋냐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내 경우 한라산 21도를 주문했는데 정말 맛있는 멜젓이 나왔으니 일단 모르겠다면 한라산 21도를 추천한다. "여보 무슨 술이야!"라고 하면서 술을 못 시키게 한다면 "이 집은 멜젓에 붓는 소주가 필요해"라면서 술 먹고 싶어서 시킨 게 아니라 맛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척을 하자.

서울에 익숙해져서 고기를 다 구워서 주시나 했는데 고기를 끝까지 구워주시지 않는다. 적당히 처음에 세팅 정도만 하고 나서 그 뒤는 각자 좋아하는 스타일로 굽는다. 불이 약하다 생각될 정도로 늦게 구워지는데 신기하게도 고기 구워지는 속도와 멜젓이 끓는 속도가 비슷하다. 일부러 맞춘 건지 모르겠지만 고기가 늦게 구워져서 속이 타들어가는데 '설마 일부러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을 더 넣어달라고 말을 못 했다.

드디어 완성. 고기를 한 점 먹어보니 고기는 잡내도 없고 아주 맛이 좋다. 이번에는 멜젓에 찍어서 먹어보니 멜젓이 맵지 않고 상당히 은은하다. 그냥 멜젓만 젓가락으로 퍼먹어 봤는데도 서울의 흑돼지 집에서 파는 멜젓의 그 강한 짭조름한 맛이 아니라 약간 묽다 싶을 정도로 향이 은은하고 부드럽다. 소주의 위력인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서울도 소주를 넣는다) 내 입에는 딱 맞는 아주 좋은 멜젓이었다. 나중에 소주를 한 번 더 부어봤는데 그랬더니 맛이 완전히 무너졌다. 해준 그대로 먹고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는 것을 추천한다.

상큼한 맛을 내는 파무침과 먹어보니 또 다른 맛이다. 서울서는 기름진 맛이나 매콤한 맛을 내는 삼겹살 집이 유명한데 이서림은 깔끔하고 상큼하기도 한 맛의 쌈을 먹을 수 있다. 고기도 좋지만 이 집은 고기를 제외한 그릇에 나오는 음식들이 너무 인상적이다.

왠지 김치찌개와 열무국수도 맛있을 것 같아서 배가 이미 찼지만 무리를 해서 주문했다. 저번에 전주에서 떡갈비를 먹었을 때 그냥 떡갈비만 먹는 것과 냉면을 곁들여 함께 먹는 것이 너무 차이가 커서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켰다.

우선 김치찌개는 맹한 김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찌개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이 좋다. 마치 '이 집 김치는 김치찌개를 하려고 만든 거지 그냥 먹으려고 만든 게 아니야'라고 하는 것처럼 국물이 시원하다. 그렇다고 '크으~' 소리가 나게 시원하지는 않다. 맵거나 짠맛이 약하다 보니 외국인도 먹을 수 쉽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뭔가 부족한 것 같은 김치찌개인데 소주 한 잔 먹고 김치찌개를 먹으면 정말 개운하다. 국물만 먹으면 뭔가 심심하니 건더기도 알아서 챙겨 먹게 된다.

열무국수는 역시 고기와 잘 어울린다. 덥고 기름진 입안을 시원하게 청소해주는 느낌이다. 면은 특별함이 없어 배가 너무 부른 상태라 조금 남겼다. 고기가 얼추 다 구워진다면 그때 열무국수를 시켜 고기를 먹는 후반부에 국물을 함께 먹어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소주로 알딸딸한 기분도 다시 번쩍 나게 해 줘 다시 한 잔 더 마시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열무국수가 더 고기와 어울렸다.

오겹살을 다 먹고 아쉬워서 항정살을 더 시켰다. 내 경우는 항정살이 먹기에 좀 더 나았다. 처음에 항정살을 먹고 나중에 오겹살에 열무국수를 먹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된다. 아... 아니다,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둘 다 뭐가 괜찮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것들이 다 특색이 있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느껴졌지만 200g을 주기 때문에 150g이 기준인 서울보다 저렴하다. 사실 먹다 보면 가격은 잊게 된다. 멜젓에 찍어먹고 파무침과 함께 먹고 깻잎에 멜젓을 찍어 파무침을 넣어 먹어본다. 거기에 김치찌개에 밥을 잠깐 먹으며 탄수화물을 보충하고 열무국수에 고기를 먹으면서 개운하게 한 번 먹어준다. 거기에 무생채를 넣어 먹어도 본다. 밑반찬이 맛이 없으면 생각도 못할 일인데 밑반찬도 맛있고 특히 멜젓이 너무 좋다. 서울의 제주 돼지 집들이 멜젓을 이상하게 끓이고 있다는 것도 오늘 알게 됐다.

오늘처럼 가게에 흑돼지가 없는 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별 상관없다. 어차피 요즘 돼지고기는 워낙 좋은 품질이라 그게 그거다. 사장님이 '음식점은 원래 반찬으로 승부를 하는 것'이라고 외치는 것 같은 가게에서 너무 맛있는 한 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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