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맛있는 집이 많은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빵집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여자친구가 오월의종에서 만든 빵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11시 오픈 전에 가서 줄을서고 세시간이면 다 팔린다고 겁을 줬다. 무슨 빵에 마약이라도 탔나 오픈도 하기 전에 줄을 서고 빵이 세시간만에 다 팔릴까하며 솔직히 안믿었다.경기도 촌아가씨가 서울남자 속일라고 뻥치나보다 하고 11시 오픈에 맞춰서 집 근처에 있는 빵집으로 갔다.
난 우리동네 살면서 그 맛있다는 브런치 집들에 점심먹으러 가도 15분 이상 기다린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이렇게 줄서서 기다리는건 자이로드롭 타겠다고 줄 서는 것말고는 본적도 없는 진풍경이다. 이쯤되니 도대체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과연 빵을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여자친구가 ‘무화과 호밀빵’을 주문한 것 외에는 뭘 사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눈에 보이는 족족 담자라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기다렸다.


가게 안에 들어가게되면 앞에 내가 사고 싶은게 있다고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다. 가게 안에서도 빽빽히 줄을 서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빵을 사거나 안사거나만 정할 수 있다. 뷔페랑 같은 구조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물론 뷔페도 앞으로 새치기는 할 수 있지만 정상적으로 생각해서) 입구에서부터 계산대까지는 5m도 되지 않지만 약 20분 정도 지나야 다 돌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지나간다. 그동안 사람들은 무엇을 하느냐? 내가 좋아하는 빵을 앞사람이 집지 않길 바라며 뒤에서 무섭도록 레이저를 보낸다. 정말 재밌는 공간이다.


힘들게 빵 샀으니 이제 시식시간. 절반만 들고 나와서 조공을 바쳤다.
슈톨렌



이쯤에서 보는 먹는 법 및 특징. 마켓컬리 슈톨렌 소개
6개월이나 보존이 가능하고 만드는데는 1년.. 2만원인 이유가 있다. 일단 쓰인대로 상온에 좀 둔 뒤에 얇게 썰어서 시식.

처음 씹으면 과자를 씹는듯 하다가 곧 부드러운 빵이 느껴진다. 그 뒤에 아몬드같은 곡물이 입에 씹힌다. 맛은 겉에 굉장히 달달한 가루와 속의 퍽퍽한 빵이 오묘하게 잘 맞는다. 다음에는 썰어놓고 상온에 뒀다가 먹어봐야겠다.
무화과 호밀빵


난 무화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걸 이렇게 듬뿍 넣어주니 맛이 없을리가 없다. 다른 가게들이 파는 무화과 빵은 잼처럼 으깨서 넓게 퍼트려 조금 넣은 것을 가릴려고 하는데 비해 빵은 데코레이션일뿐 속이 무화과로 꽉 차있다. 정말정말 추천한다. 가게 가장 끝에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건자두 호밀빵


포카치아


빵을 좋아하지만 빵이 촉촉하고 어쩌고하는 설명을 잘 못하는 병(블로그 이름이 괜히 ‘감수성과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개발자’가 아니다)이 있어 자세히는 알려줄 수 없지만 오전 11시에 사람들이 빵 한 번 먹겠다고 줄을 서고 구매까지 약 1시간이 걸리는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것만으로도 맛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맛이 없어도 이 정도면 맛있다고 해야 혓바닥 의심을 안받는다.
다만, 너무 오래 기다려서 사람들이 약간 예민하다. 그 와중에 강아지 데리고 가게에 들어가려는 정신 놓은 여자도 있다. (어떤 어르신이 안된다고 하니 안들어갈거라고 싸가지 없게 말한다. 그냥 싸가지가 없는 여자인듯.. 남편의 얼굴에 어두움이 가득하더라) 이 외에도 등산폴로 나오는 사람 치는 아저씨 등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어서 다들 나올 때 한숨과 탄식을 내뿜으며 나온다.
왠만하면 가보라고 하겠는데 이 집만큼은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맛있는 빵을 먹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한다. 아니라면 불쌍한 남자들에게 주문하면 된다. 참고로 대기인원의 30%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고 멀뚱멀뚱 서 있는 아저씨들이었다.
PS: 2호점도 있습니다. (2호점에서 산 슈톨렌 중 하나에 손톡 두마디 정도 되는 머리카락이 들어가 있네요… 아주 우연히 한 번 발생한건지 제빵할 때 모자를 안쓰고 위생을 대충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본점 이용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