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모니카 피어,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봤던 곳-2024년 1월 6일, 로스앤젤레스-Santa Monica Pier in LA, United States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젊은 남녀나 친구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바닷가 놀이공원이 꼭 등장한다. 화면 속에서 수없이 봤던 그 익숙한 장소가 바로 여기 산타 모니카 피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조금 내보려고 로스앤젤레스 여행 일정의 저녁 코스로 이곳을 찾았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소화도 시킬 겸 밤바다 산책을 하러 나섰다.

밤에 불이 켜진 산타 모니카 요트 하버 앤 스포츠 피싱 보팅 카페스 네온사인 아치

입구에 도착하면 커다란 네온사인 간판이 가장 먼저 반겨준다. 1909년에 세워져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답게 간판부터 레트로한 감성이 물씬 풍긴다. 서부 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유원지가 있는 부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인지,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꽤 상징적인 장소인 듯하다.

밤의 산타 모니카 피어 나무 데크 위를 걷는 사람들과 멀리 보이는 관람차

부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늦은 시간인데도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엄청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느낌보다는 옛날 유원지에 온 것처럼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낡은 나무 데크가 어우러져서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다만 밤바다 똥바람이 꽤 쌀쌀해서 콧물을 훌쩍이며 걷는 내 꼴은 영화 속 주인공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부바 검프 슈림프 컴퍼니 로고 아래 나무 벤치와 그 앞에 놓인 낡은 운동화 조형물

조금 걷다 보면 익숙한 새우 로고가 보이는데 바로 부바검프 쉬림프 컴퍼니 식당이다. 명작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모티브로 한 곳으로, 가게 앞에는 주인공 포레스트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벤치와 낡은 나이키 신발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들 한 번씩 벤치에 앉아서 인증샷을 찍고 간다.

그럼 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가? 아니오. 저녁은 이 부두로 오기 전 시내 쪽에서 미리 예약해 둔 산타모니카 피어를 가기 전에 들린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미 거하게 먹고 왔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또 새우 요리를 시키지는 않았다. 배도 부르고 미국 여행 중에 해산물은 다른 곳에서도 먹을 기회가 많을 테니 사진만 몇 장 찍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한 번 먹어볼걸 그랬나.

퍼시픽 파크 네온사인과 롤러코스터, 관람차가 있는 놀이공원 앞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부두를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퍼시픽 파크’라는 아담한 놀이공원이 나온다. 이 놀이공원이 바로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그 배경이다. ‘아이언맨’ 1편에서 토니 스타크가 비행 테스트를 하다 야간에 스쳐 지나간 곳이기도 하고, 구형 롤러코스터와 관람차가 뿜어내는 빈티지한 불빛 덕분에 옛날 미국 하이틴 영화의 단골손님이다.

밤바다 위로 뻗은 부두와 화려하게 빛나는 퍼시픽 파크의 대관람차

밤바다와 어우러진 관람차 조명이 제법 운치 있어서 계속 바라보게 된다.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기구를 타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굳이 여기까지 와서 멀미약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밖에서 구경만 했다. 참고로 나는 서울서도 놀이기구를 안탄다.

어두운 바다 너머로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 야경을 바라보는 부두 위의 두 사람

놀이공원을 지나 부두 끝자락 펜스 쪽으로 가면 바다 너머로 로스앤젤레스 도심의 야경이 보인다. 눈앞의 바다는 칠흑 같이 깜깜한데 그 뒤로는 도시 불빛이 길게 반짝이는 묘한 풍경이다. 화려하고 번쩍이는 고층 빌딩 숲이 아니라 잔잔하게 깔린 불빛들이라서 마음이 꽤 편안해진다. 어쩌면 이런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 때문에 타임머신물 같은 영화에 이 부두가 단골로 등장하는걸지도.

산타 모니카 피어 나무 바닥에 그려진 나침반 모양의 로고와 그 주변에 세워진 전동 킥보드들

나무로 된 바닥을 유심히 보며 걷다 보면 산타모니카 피어라고 적힌 커다란 나침반 그림이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그 주변으로는 누군가 타고 온 전동 킥보드들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주말에는 차를 끌고 오기엔 주차장 진입이 꽤 번거로운 곳이라서, 이런 킥보드를 빌려 타고 슬쩍 와서 바닷바람만 쐬고 가는 현지인들도 꽤 많은 것 같다.

루트 66의 끝을 알리는 표지판과 관련 기념품들이 전시된 유리 진열장

사실 산타모니카 피어에서 화려한 야경이나 놀이공원보다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미 대륙을 횡단하는 전설적인 고속도로, 루트 66의 끝을 알리는 간판과 기념품 숍이다. 시카고에서 시작해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에서 끝나는 2,448마일 대장정의 찐 종착지가 바로 이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 스티커와 번호판들을 보니 왠지 모를 낭만이 느껴진다.

요즘 지어지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테마파크와는 거리가 멀지만, 오랜 시간 동안 헐리우드 영화의 배경이 되며 겹겹이 쌓아온 낡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다한 곳이다. 밤공기가 생각보다 차가울 수 있으니 저녁에 방문할 때는 겉옷을 꼭 하나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미국 서부의 옛 감성을 조용히 느끼기에 딱 좋은 밤 산책이었다.

밤의 산타모니카 피어 나무 데크 길을 걷는 사람들과 멀리 보이는 화려한 관람차.
산타모니카 66번 국도 표지판과 그 아래 붉은 줄무늬 지붕의 피어 버거 식당 앞을 지나는 사람들.
밤하늘 아래 빛나는 산타모니카 요트 항구 네온사인 아치형 간판.